케네디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케네디 1세 존 F.케네디였다. 그와 함께 정치를 한 로버트와 테드 케네디 그리고 여자 형제들 캐슬린, 진, 로즈마리 등을 포함해 총 8명의 형제가 있었다. 존 F.케네디는 1947년에 미국 하원에 선출되었고, 그 이후로 지도자, 정치인, 대사, 산업 대표, 자선사업, 환경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활약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가문은 마약, 스캔들, 살해에 연루되며 저주받은 가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진을 통해 저주받은 것으로 알려진 케네디 가문의 불행한 역사를 확인해 보자.
케네디 가문의 가장 유명한 비극은 존 F 대통령의 암살일 것이다. 케네디와 그의 형 로버트 F. 케네디는 아내와 함께 자동차 행렬을 타고 댈러스를 지나던 중 총에 맞았다. 그는 46세였고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존 F. 케네디의 암살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족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의 형 로버트 프랜시스 "바비" 케네디도 미국 법무장관을 지내면서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역시 1968년에 총에 맞아 죽었다. 그를 살인한 사람은 시르한 시르한이라는 이름의 팔레스타인 청년으로, 케네디가 이스라엘을 지지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했다고 한다.
지난 몇년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케네디의 가문의 인물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데, 이것은 이 가족이 저주를 받았다고 믿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가장 먼저 비행기 추락사를 당한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종사였던 맏형 조지프 P. 케네디 주니어였다. 그는 1944년에 다른 조종사들과 함께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위험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데 자원했고, 비행기 안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4년 후 여동생 캐슬린 케네디는 작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상공을 여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탄 비행기가 추락했고, 캐슬린과 다른 승객 3명이 사망했다. 그 당시 그녀는 겨우 28세였다.
로버트 케네디의 아내 에델 케네디는 1955년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연료가 떨어진 후 추락한 콜베어 비행기를 타고 여행 중이었다. 에델의 형 조지도 1966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1964년 테드 케네디도 비행기 사고에 연루되었다. 그는 정치인 동료 몇 명과 함께 워싱턴에서 매사추세츠까지 소형 전세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케네디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다른 두 명의 승객들은 목숨을 잃었다.
1969년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체퍼퀴딕 섬에서 열린 파티에서 메리 조 코페치네라는 이름의 젊은 선거 운동원을 집으로 태워다 주고 있었다. 케네디는 차를 제어할 수 없었고, 결국 차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탈출하여 안전한 곳으로 헤엄쳤지만, 코페치네는 차에 갇힌 채로 익사했다.
존 F. 케네디의 조카인 윌리엄 케네디 스미스는 1991년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당시 31세로 의사였으며, 그의 삼촌 테드 케네디, 사촌 패트릭 케네디와 술집에서 술을 마신 후 플로리다에 있는 케네디 팜 비치 휴양지에서 한 여성을 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나이트클럽에서 이 여성을 만나 폭행 의혹이 제기된 집으로 함께 간 것으로 알려졌다.
진술서에서 그 여성은 권력가 출신의 한 남자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밝혔다. 그녀는 "나의 결정이 헛되지 않았기를, 그리고 이 사건이 야기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2002년 케네디 대통령의 사촌인 마이클 스카켈은 1975년 마타 목슬리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스카켈과 목슬리 둘 다 당시 15세였고,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의 이웃이었다. 목슬리는 할로윈 밤에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골프채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
마이클과 그의 형 토미는 그 당시 심문을 받았고, 계속해서 그들의 말을 바꾸었다. 마이클이 그날 밤 이웃집 창문을 훔쳐보고 자신을 만지고 있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토미에서 마이클로 옮겨갔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살인으로 기소되지 않았지만 그 가족은 몇 년 동안 의혹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인 마이클 르모인 케네디는 1997년 그의 아이들의 전 베이비시터와 바람을 피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스캔들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기소되지 않았지만 그의 아내가 그를 떠났고 그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그해 말 케네디는 애스펜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그가 스키를 타는 동안 축구를 하고 있었고, 그는 멈추라고 말하는 스키 순찰대원들을 무시하고, 헬멧도 쓰고 있지 않았다. 결국 케네디는 빠른 속도로 나무를 들이받아 죽었다.
1940년대에 존 F. 케네디는 애디슨병이라고 불리는 자가면역질환을 진단받았다. 케네디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다수의 스테로이드를 복용했고, 약을 남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디슨병은 감염과 싸우는 신체의 능력을 심각하게 감소시켰고, 케네디는 대통령 임기 동안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경미한 감염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
1961년 그는 피그스 만 침공과 관련해 빈 정상회담에서 소련과 협상해야 하는 큰 압력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거의 죽을 뻔한 감염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 병은 성병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릴 수 없었다.
재케 케네디의 아버지와 남편은 아주 비슷했다. 그녀의 아버지 존 "블랙 잭" 부비에는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와 존 F. 케네디는 아주 잘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블랙잭과 존 F. 케네디가 다른 여성들과 술을 마시고 유혹하며 어울렸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들이 "공유"한 호텔 방으로 콜걸을 불렀다는 소문도 있다.
재키 케네디는 사산에 이어 유산을 경험해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남편이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 이것을 더 악화시켰다.
마약 중독은 케네디 가문을 괴롭히는 또 다른 문제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아버지와 삼촌을 암살로 잃은 채 수년간 마약과 싸웠다. 다행히 그는 치료를 받고 살아남았지만, 그의 동생 데이비드는 헤로인 중독으로 오랫동안 고생했고 1984년 28세의 나이로 호텔 방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코트니 케네디의 딸이자 로버트의 손녀인 시얼샤 케네디 힐은 22세의 나이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정신병과 중독으로 고군분투해 왔으며, 처방약과 알코올의 혼합물이 그녀의 몸에서 발견되었다.
2020년에는 로버트 F. 케네디 또 다른 손녀 매브 케네디가 8살 아들과 함께 익사했다. 그 두 사람은 체서피크 만에서 카누를 탔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시체는 며칠 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케네디 가문이 겪은 수많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로즈 케네디는 그녀의 친척들이 비극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금지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도 집에서 울지 못하도록 했다. "비극에 집중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라고 그녀가 말했다.
출처: (CNN) (The New York Times) (E!) (Psychology Today)
비극이 끊이지 않는 케네디 가문의 저주!
저주받은 가족의 스캔들과 죽음
연예계 유명한 가족
케네디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케네디 1세 존 F.케네디였다. 그와 함께 정치를 한 로버트와 테드 케네디 그리고 여자 형제들 캐슬린, 진, 로즈마리 등을 포함해 총 8명의 형제가 있었다. 존 F.케네디는 1947년에 미국 하원에 선출되었고, 그 이후로 지도자, 정치인, 대사, 산업 대표, 자선사업, 환경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활약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가문은 마약, 스캔들, 살해에 연루되며 저주받은 가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진을 통해 저주받은 것으로 알려진 케네디 가문의 불행한 역사를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