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문화적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는 평생 동안 친구들과 측근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주변에 두었으며, 이들은 '멤피스 마피아'로 알려졌다. 일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었고, 일부는 군 복무 중 만난 사람들이었다. 몇몇은 단순한 주변인으로 볼 수도 있었다.
엘비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이 그룹이 그에게 행사하는 영향력도 커졌다. 그들은 항상 그와 함께했고, 엘비스가 혼자 있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멤피스 마피아는 엘비스에게 지나치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사진을 통해 엘비스가 훗날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한 친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멤피스 마피아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친구, 측근, 직원들로 이루어진 끈끈한 그룹이었다. 사진 속 엘비스와 함께 있는 핵심 멤버로는 빌리 스미스, 라마르 파이크, 제리 실링, 엘비스의 아버지 버논 프레슬리, 찰리 호지, 소니 웨스트, 조지 클라인, 마티 래커가 있다. 사진에서 앉아 있는 사람들은 조지 니코풀로스 박사, 엘비스, 그리고 레드 웨스트다. 또한 보안관 빌 모리스와 로이 닉슨도 함께 사진에 등장하며, 이들은 명예 법 집행 배지를 받은 직후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4년 경력 초기에 신뢰할 수 있고 충성스럽고 존중하는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싸며, 그의 첫 번째 사촌인 주니어와 진 스미스가 항상 그와 함께했고, 고등학교 친구인 레드 웨스트도 동행했다.
초창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젊은 스타였던 엘비스가 몇몇 친구들과 어울리며 농담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커지면서, 엘비스는 이후 '멤피스 마피아'로 알려지게 될 첫 번째 그룹에 둘러싸이게 됐다.
1956년 6월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콘서트 후 지친 엘비스 프레슬리는 무릎을 꿇고 고향 친구인 미시시피 투펠로 출신 에드워드 손턴에게 목 마사지를 받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은 조지 클라인이었다. 그는 멤피스의 휴메스 고등학교에서 8학년 때 엘비스를 처음 만났으며, 1977년 엘비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클라인은 멤피스에서 라디오 DJ와 TV 진행자로 오랜 기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950년대 후반이 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세계적인 음악 스타로 자리 잡았다. 멤피스 마피아 구성원은 점점 늘어났지만 여전히 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측근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사인을 받으려 몰려드는 열성 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8년 미국 육군에 징집되어 2년 동안 현역 군인으로 복무했다. 이 사진은 1958년 3월 24일 포트 채피에서 그가 군에 입대하는 모습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 복무 중 서독 프리드베르크의 군 기지에서 조 에스포지토를 만났다. 두 사람은 빠르게 친밀한 우정을 쌓았으며, 이후 에스포지토는 엘비스의 로드 매니저가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군 복무 중 찰리 호지와 다시 만나게 됐다. 두 사람은 1955년 호지가 가스펠 콰르텟에서 활동하던 당시 처음 만났으며, 이후 엘비스가 1969년 라이브 공연을 재개했을 때 '엘비스 프레슬리 쇼'의 무대 감독이자 음악가로 활동했다.
1960년 3월, 엘비스 프레슬리는 공식적으로 군에서 제대했다. 레드 웨스트는 1955년부터 엘비스의 동반자, 운전기사, 경호원으로 일해 왔으며, 엘비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멤피스 마피아의 두 번째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라이브 콘서트 무대를 떠나 할리우드로 향했다. 그의 주요 경호원들은 종종 어두운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엘비스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었으며, 팬들이 영화 촬영장으로 몰려들었다. 이 시기에 언론은 엘비스의 측근들을 '멤피스 마피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검은색 리무진과 스모크 글라스 창문을 사용한 것도 이러한 별칭을 더욱 부각시켰다.
조 에스포지토는 마티 래커와 함께 1967년 5월 1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뷰리유의 결혼식에서 공동 신랑 들러리를 맡았다. 에스포지토의 아내 조애니는 신부 들러리를 맡았으며, 신부의 여동생 미셸 뷰리유가 들러리로 함께했다.
소니 웨스트와 레드 웨스트는 여러 엘비스 프레슬리 영화에 출연했으며, 스턴트맨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레드 웨스트는 엘비스를 위해 'That's Someone You Never Forget'을 작곡했으며, 이 곡은 1962년 앨범 'Pot Luck with Elvis'에 수록됐다. 그는 찰리 호지와 함께 'You'll Be Gone'을 공동 작곡했으며, 이 곡은 1965년 영화 'Girl Happy'의 사운드트랙 LP에 포함됐다.
1968년 TV 콘서트 '68 컴백 스페셜'이 성공을 거둔 후, 엘비스 프레슬리는 라이브 공연 복귀를 발표했다. 그는 1969년 8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 에스포지토, 아버지 버논 프레슬리, 라마르 파이크, 소니 웨스트와 함께 자리했다.
1970년대 동안 멤피스 마피아의 주요 멤버였던 레드 웨스트, 소니 웨스트, 찰리 호지, 조 에스포지토 외에도 앨런 포타스, 라마르 파이크, 리처드 데이비스, 마티 래커, 지미 킹슬리, '치프' 레이 시튼, 제리 실링, 마이크 키튼, 데이브 헤블러, 샘 톰슨 등이 합류하며 그룹이 더욱 확대됐다.
멤피스 마피아가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기, 찰리 호지는 엘비스 프레슬리 밴드의 정식 멤버로 활동했다. 그는 기타를 연주하며 엘비스와 화음을 맞췄고, 공연 중에는 스카프와 음료를 건네기도 했다.
라마르 파이크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무대 조명을 담당했으며, 마티 래커는 사실상 감독 역할을 맡아 모든 일을 조율했다. 제리 실링은 다른 그룹들이 사용하는 오디오 장비에 대한 조언을 제공했으며, 빌리 스미스는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하는 만능 해결사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2년 12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이를 승인받았다. 그는 소니 웨스트와 제리 실링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했다.
멤피스 마피아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랫 팩'만큼이나 유명해졌다. 이들은 파티를 즐기고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엘비스를 원치 않는 간섭으로부터 보호했다. 하지만 외부인들에게는 멤피스 마피아가 엘비스에게 지나치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때 엘비스 프레슬리를 위해 일한 사람은 20명이 넘었으며, 이들은 함께 생활하고 식사를 했다. 일부는 엘비스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내는 혜택을 누렸으며, 그의 유명한 저택인 그레이스랜드에서 숙소를 제공받았다.
1970년대 중반이 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국제적인 인기는 점차 하락했다. 여전히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음악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의 음반 판매량이 감소하면서 문화적 영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1973년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의 급격한 재정 악화는 부분적으로 프리실라와의 이혼 때문이었다. 그의 매니저 톰 파커가 엘비스의 수익에서 과도한 비율을 가져가면서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에 따라 지출을 줄여야 했으며, 엘비스의 아버지 버논 프레슬리는 아들의 수행원 중 일부에 대해 불만을 표출해 왔던 만큼 경호 인력의 급여 삭감을 추진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그의 체중은 급격히 증가했으며, 처방약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76년 7월, 급격히 증가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버논 프레슬리는 소니 웨스트와 레드 웨스트를 갑작스럽게 해고했다. 또 다른 경호원인 데이브 헤블러도 함께 해고됐다.
웨스트 형제와 헤블러는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한 폭로성 책인 "엘비스: 무슨 일이 있었나?"를 집필했다. 이 책은 엘비스와 세 사람의 관계를 상세히 다루었으며, 그의 사생활, 약물 사용, 음악 경력과 관련된 사건들을 담고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 과거 친구라 불렀던 이들에게 상처받고 배신감을 느낀 채 세상을 떠났다.
1977년 8월 18일,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영면에 들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반한 사람들 중에는 멤피스 마피아의 멤버인 빌리 스미스, 진 스미스, 조 에스포지토, 라마르 파이크, 조지 니코풀로스, 찰리 호지, 제리 실링, 그리고 조지 클라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끝까지 충성을 다한 조 에스포지토는 장례식 후 슬픔에 잠긴 버논 프레슬리를 납골당에서 부축했다. 이후 엘비스 프레슬리의 유해는 그레이스랜드 부지로 다시 안치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후, 레드 웨스트는 연기 활동을 이어갔으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2017년 7월 18일, 8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77년 이후 소니 웨스트는 여러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엘비스 관련 행사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엘비스와 함께했던 시간과 그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니 웨스트는 2017년 5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찰리 호지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산을 기리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매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엘비스 프레슬리 관련 행사에서 연설을 했고, 때때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3월 3일 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개인 주치의였던 조지 C. 니코풀로스 박사는 1977년 8월 16일 병원 기자회견에서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이후 니코풀로스 박사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과도한 처방을 했다는 혐의로 14건의 기소를 당했다. 1980년 테네시주 의학 심사 위원회는 그를 과다 처방 혐의로 유죄 판결하고 의사 면허를 3개월 정지시키며 3년간의 보호 관찰을 명령했다. 그는 2016년 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조 에스포지토는 생애 후반부를 엘비스 관련 서적의 저자이자 출판인으로 보냈다. 그는 멤피스 마피아 출신 중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하나였으며, 여러 엘비스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아 엘비스에 대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2016년 1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제리 실링은 현재 연예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고객 중에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자 고인이 된 리사 마리 프레슬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멤피스 마피아의 일원으로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했던 시간을 담은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출처: (History-of-Rock) (Elvis History Blog) (Graceland) (The New York Times)
엘비스 프레슬리와 멤피스 마피아,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
엘비스의 활동 기간 내내 함께했던 핵심 인물들
연예계 음악
엘비스 프레슬리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문화적 인물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음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그는 평생 동안 친구들과 측근들로 이루어진 그룹을 주변에 두었으며, 이들은 '멤피스 마피아'로 알려졌다. 일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었고, 일부는 군 복무 중 만난 사람들이었다. 몇몇은 단순한 주변인으로 볼 수도 있었다.
엘비스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이 그룹이 그에게 행사하는 영향력도 커졌다. 그들은 항상 그와 함께했고, 엘비스가 혼자 있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멤피스 마피아는 엘비스에게 지나치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사진을 통해 엘비스가 훗날 자신을 배신했다고 비난한 친구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