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전쟁의 장소들
- 전쟁터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군사적 교전들을 영구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원 풍경들은 한 때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의 피로 물들었다. 이 분쟁 지역들은 후대를 위해 보존되어 있으며, 과거 전쟁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남아 있으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세계 대전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사진을 통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현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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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 전투
-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8월 또는 9월에 벌어졌다. 전투는 좁은 해안 길에서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끄는 대부분 스파르타인인 그리스군과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우세한 군대 간의 대격돌이었다. 그리스의 이 전장 주변에는 여러 기념물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전투복을 입은 패배한 레오니다스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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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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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 전투
- 보인 전투는 1690년 7월 1일에 벌어진 전투로 제임스 2세 국왕의 군대와 윌리엄 3세의 군대가 격돌했다. 잘 정비된 보인 전장은 아일랜드의 드로헤다 마을과 가까운 보인강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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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전투
- 게티즈버그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펜실베니아의 게티즈버그 마을과 그 주변에서 벌어졌고,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일어난 군사적인 대결들 중 거의 틀림없이 가장 유명하다. 연합국군은 그들의 남부 연합 적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51,000명의 사상자들 중 8,000명이 전투에서 죽었다. 링컨 대통령이 그의 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연설을 했던 게티즈버그 국립 묘지를 포함하여, 몇몇 기념비들이 국립 군사 공원인 전장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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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치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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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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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로든 전투
- 컬로든 전투는 1746년 4월 16일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가 내려다보이는 드럼모시 무어에서 일어났다. 컬로든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군대가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아우구스투스가 이끄는 영국 정부군에 의해 패배했을 때 자코바이트 봉기로 절정에 달했다. 이 전투장은 일련의 기념 의자들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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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브리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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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연합군이 선택한 노르망디 해안 5개 구역 중 하나인 오마하(사진)는 미군만 2,400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아주 치열한 전투였다. 몇몇 기념비는 연합군이 해안으로 진격한 5개 구역을 모두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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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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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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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25일까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빽빽한 숲이 우거진 아르덴 지역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나치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최후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전투로 인해 독일제국은 약 10만 명, 미국은 약 8만 1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삼림 지대와 그 주변에는 다양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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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우가 전투
- 1863년 9월 18일 조지아주 치카마우가에서 연합군과 남부군이 충돌했는데, 이는 남북전쟁의 서부 전선에서 연합군에게 가장 큰 패배로 판명되었다. 양측의 손실은 34,000명의 전사자와 부상자에 이른다. 채터누가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고, 국립 군사 공원이기도 한 전장에는 여러 기념물과 기념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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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버그 전투와 공방전
- 빅스버그는 율리시스 S. 그랜트와 그의 테네시 군대가 1863년 5월 18일부터 7월 4일까지 이어진 주요 군사 교전 동안 미시시피 강을 건너 존 C. 펨버튼이 이끄는 남부 연합군을 몰아낸 곳이다. 빅스버그 국립 군사 공원은 다양한 전쟁터의 주요 장소들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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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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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헴 전투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의 아른헴, 오스터벡, 볼프헤제, 드리엘 마을 주변으로 1944년 9월 연합군이 뫼즈강을 따라 다리와 마을을 점령하고 라인강의 양쪽을 확보하려는 시도인 아른헴 전투가 일어났다. 아른헴에 있는 다리는 독일군의 저항과 반격이 연합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때 "너무 먼 다리"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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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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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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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전투
- 영국 남북전쟁 동안 일어난 많은 군사적 교전들 중 하나인 몽고메리 전투에서 의회군이 웨일즈에 있는 몽고메리 성을 공격하던 왕당파 군대에 진격했다. 전투는 1644년 9월 17일에 시작되었고 왕당파의 패배로 끝났다. 현재 이 전투장과 성 유적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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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들와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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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스 드리프트 전투
-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는 1879년 1월 22-23일에 일어났고, 영국-줄루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대립 중 하나이다. 약 150명의 영국군과 식민지 군대가 3,000명에서 4,000명의 줄루 전사들의 공격으로부터 남아프리카 나탈 지방의 로크스에 있는 임무 기지를 간신히 방어했다. 이 전투장은 여러 개의 무덤 표식과 돌로 쌓은 무덤들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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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 콩코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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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에 전투
- 기원전 216년 8월 2일, 로마와 한니발의 카르타고인들 사이에 벌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중요한 군사적 교전인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의 군대가 우월한 로마 군대를 학살했다. 이 전장은 칸나에 디 바타글리아 고고학적 장소 내에 기념비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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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시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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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디노 전투
- 나폴레옹의 대육군은 1812년 9월 7일 러시아 캠페인 중에 일어난 보로디노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두 개의 오벨리스크로 구별되는 이 전장은 현재 국립 보로디노 전쟁 및 역사 박물관 및 보호 구역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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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전투
- 나폴레옹이 이룬 가장 위대한 군사적 승리는 1805년 12월 2일 그의 대육군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대를 물리쳤을 때 오스트리아 제국(오늘날 체코의 슬라브코부 브르나)의 아우스터리츠 마을 근처에서 일어났다. 멋진 기념비가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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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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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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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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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러토가 전투
- 뉴욕 북부에 있는 새러토가 국립역사공원은 새러토가 전투가 일어난 장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새러토가 전투는 1777년 9월 19일과 10월 7일의 새러토가 전투에서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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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 역사학자들은 정기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전쟁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하나로 꼽는다. 1942년 8월 23일 독일군이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오늘날 볼고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를 점령하려고 시도했을 때 시작되었다. 1943년 2월 2일 적대행위가 끝날 때까지 추축국의 사상자는 80만 명에 달했고, 소련군은 110만 명, 민간인은 약 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루디니나 제분소의 유적은 전사한 사람들의 기념물로 서 있으며 박물관 시설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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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코 전투
- 부사코 전투라고도 알려진 이 전투는 반도 전쟁 중인 1810년 9월 27일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군사적 교전이다. 중부 포르투갈의 세라 도 부사코의 숲이 우거진 비탈에서 웰링턴의 영국-포르투갈 군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전장은 오벨리스크로 기념되고 있다. 출처: (Discover Magazine) (National Army Museum) (Holocaust Encyclopedia) (New Georgia Encyclopedia) (ThoughtCo)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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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전쟁의 장소들
- 전쟁터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군사적 교전들을 영구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원 풍경들은 한 때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의 피로 물들었다. 이 분쟁 지역들은 후대를 위해 보존되어 있으며, 과거 전쟁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남아 있으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세계 대전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사진을 통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현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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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 전투
-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8월 또는 9월에 벌어졌다. 전투는 좁은 해안 길에서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끄는 대부분 스파르타인인 그리스군과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의 우세한 군대 간의 대격돌이었다. 그리스의 이 전장 주변에는 여러 기념물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전투복을 입은 패배한 레오니다스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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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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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 전투
- 보인 전투는 1690년 7월 1일에 벌어진 전투로 제임스 2세 국왕의 군대와 윌리엄 3세의 군대가 격돌했다. 잘 정비된 보인 전장은 아일랜드의 드로헤다 마을과 가까운 보인강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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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전투
- 게티즈버그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펜실베니아의 게티즈버그 마을과 그 주변에서 벌어졌고,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일어난 군사적인 대결들 중 거의 틀림없이 가장 유명하다. 연합국군은 그들의 남부 연합 적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51,000명의 사상자들 중 8,000명이 전투에서 죽었다. 링컨 대통령이 그의 역사적인 게티즈버그 연설을 했던 게티즈버그 국립 묘지를 포함하여, 몇몇 기념비들이 국립 군사 공원인 전장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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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치테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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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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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로든 전투
- 컬로든 전투는 1746년 4월 16일 스코틀랜드의 인버네스가 내려다보이는 드럼모시 무어에서 일어났다. 컬로든은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의 군대가 컴벌랜드 공작 윌리엄 아우구스투스가 이끄는 영국 정부군에 의해 패배했을 때 자코바이트 봉기로 절정에 달했다. 이 전투장은 일련의 기념 의자들로 특징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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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털링 브리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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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연합군이 선택한 노르망디 해안 5개 구역 중 하나인 오마하(사진)는 미군만 2,400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아주 치열한 전투였다. 몇몇 기념비는 연합군이 해안으로 진격한 5개 구역을 모두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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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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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즈워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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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 1944년 12월 16일부터 1945년 1월 25일까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빽빽한 숲이 우거진 아르덴 지역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나치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최후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 전투로 인해 독일제국은 약 10만 명, 미국은 약 8만 1천 명의 사상자를 냈다. 삼림 지대와 그 주변에는 다양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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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카마우가 전투
- 1863년 9월 18일 조지아주 치카마우가에서 연합군과 남부군이 충돌했는데, 이는 남북전쟁의 서부 전선에서 연합군에게 가장 큰 패배로 판명되었다. 양측의 손실은 34,000명의 전사자와 부상자에 이른다. 채터누가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고, 국립 군사 공원이기도 한 전장에는 여러 기념물과 기념 대포가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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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버그 전투와 공방전
- 빅스버그는 율리시스 S. 그랜트와 그의 테네시 군대가 1863년 5월 18일부터 7월 4일까지 이어진 주요 군사 교전 동안 미시시피 강을 건너 존 C. 펨버튼이 이끄는 남부 연합군을 몰아낸 곳이다. 빅스버그 국립 군사 공원은 다양한 전쟁터의 주요 장소들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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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폴리 상륙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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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른헴 전투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의 아른헴, 오스터벡, 볼프헤제, 드리엘 마을 주변으로 1944년 9월 연합군이 뫼즈강을 따라 다리와 마을을 점령하고 라인강의 양쪽을 확보하려는 시도인 아른헴 전투가 일어났다. 아른헴에 있는 다리는 독일군의 저항과 반격이 연합군의 진격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때 "너무 먼 다리"로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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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모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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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든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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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 전투
- 영국 남북전쟁 동안 일어난 많은 군사적 교전들 중 하나인 몽고메리 전투에서 의회군이 웨일즈에 있는 몽고메리 성을 공격하던 왕당파 군대에 진격했다. 전투는 1644년 9월 17일에 시작되었고 왕당파의 패배로 끝났다. 현재 이 전투장과 성 유적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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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들와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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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스 드리프트 전투
- 로크스 드리프트 전투는 1879년 1월 22-23일에 일어났고, 영국-줄루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대립 중 하나이다. 약 150명의 영국군과 식민지 군대가 3,000명에서 4,000명의 줄루 전사들의 공격으로부터 남아프리카 나탈 지방의 로크스에 있는 임무 기지를 간신히 방어했다. 이 전투장은 여러 개의 무덤 표식과 돌로 쌓은 무덤들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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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 콩코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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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에 전투
- 기원전 216년 8월 2일, 로마와 한니발의 카르타고인들 사이에 벌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중요한 군사적 교전인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의 군대가 우월한 로마 군대를 학살했다. 이 전장은 칸나에 디 바타글리아 고고학적 장소 내에 기념비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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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시아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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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디노 전투
- 나폴레옹의 대육군은 1812년 9월 7일 러시아 캠페인 중에 일어난 보로디노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중요한 승리를 거두었다. 두 개의 오벨리스크로 구별되는 이 전장은 현재 국립 보로디노 전쟁 및 역사 박물관 및 보호 구역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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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전투
- 나폴레옹이 이룬 가장 위대한 군사적 승리는 1805년 12월 2일 그의 대육군이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군대를 물리쳤을 때 오스트리아 제국(오늘날 체코의 슬라브코부 브르나)의 아우스터리츠 마을 근처에서 일어났다. 멋진 기념비가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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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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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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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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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러토가 전투
- 뉴욕 북부에 있는 새러토가 국립역사공원은 새러토가 전투가 일어난 장소를 포함하고 있는데, 새러토가 전투는 1777년 9월 19일과 10월 7일의 새러토가 전투에서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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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그라드 전투
- 역사학자들은 정기적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전쟁 역사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 중 하나로 꼽는다. 1942년 8월 23일 독일군이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오늘날 볼고그라드라고 불리는 도시를 점령하려고 시도했을 때 시작되었다. 1943년 2월 2일 적대행위가 끝날 때까지 추축국의 사상자는 80만 명에 달했고, 소련군은 110만 명, 민간인은 약 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루디니나 제분소의 유적은 전사한 사람들의 기념물로 서 있으며 박물관 시설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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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코 전투
- 부사코 전투라고도 알려진 이 전투는 반도 전쟁 중인 1810년 9월 27일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군사적 교전이다. 중부 포르투갈의 세라 도 부사코의 숲이 우거진 비탈에서 웰링턴의 영국-포르투갈 군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전장은 오벨리스크로 기념되고 있다. 출처: (Discover Magazine) (National Army Museum) (Holocaust Encyclopedia) (New Georgia Encyclopedia) (ThoughtCo)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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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방문할 수 있는 역사적인 전쟁의 장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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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는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군사적 교전들을 영구적으로 상기시켜 주는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전원 풍경들은 한 때 수백, 때로는 수천 명의 피로 물들었다. 이 분쟁 지역들은 후대를 위해 보존되어 있으며, 과거 전쟁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남아 있으며, 이들 중 많은 것들이 세계 대전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사진을 통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현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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