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첩보국, MI5와 MI6는 무엇이 다를까?
- 영국에는 두 개의 주요 첩보 기관이 존재한다. 바로 MI5와 MI6이다. 이 두 기관은 20세기 초, 독일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영국 제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후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기간 동안,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영국의 안보를 지켜왔다. 특히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 주된 감시 대상이 되었다. MI5와 MI6는 모두 ‘국가 방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지만, 운영 방식과 역할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과연 MI5와 MI6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영국의 은밀한 정보기관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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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5 - 보안국
- MI5, 공식 명칭으로는 보안국(Security Service)은 영국의 국내 방첩 및 안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다. 본부는 런던 중심부의 템스 하우스(Thames House)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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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국장, 프랜시스 월싱엄 경 (1532년~1590년경)
- MI5의 전신은 1569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수석 비서였던 프랜시스 월싱엄 경(Sir Francis Walsingham)이 창설한 비밀 정보 조직으로, 그는 흔히 여왕의 "첩보국장(spymaster)"으로 불리며 현대 정보활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활동은 대외 첩보뿐 아니라 국내 보안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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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논 켈 대령 (1873년~1942년)
- 현대적인 형태의 MI5는 1909년, 버논 켈(Vernon Kell) 대령(후에 소장)의 지휘 아래 '비밀정보국(Secret Service Bureau)'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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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MI5
-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MI5는 적국의 스파이 혹은 용의자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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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 예비 장교
- 이 시기 체포된 인물 중에는 독일 제국 해군의 예비 장교였던 칼 한스 로디(Carl Hans Lody)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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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처형
- 그는 ‘찰스 잉글리스(Charles Inglis)’라는 가명을 사용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간첩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발각되어 ‘전쟁 반역죄(war treason)’로 기소되었다.그는 런던에서 열린 군사재판(사진)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914년 11월 6일에 처형되었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영국 내에서 적국 간첩에 대해 공개 재판이 이루어진 유일한 사례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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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기
- 전쟁 직후 MI5는 인력 감축을 겪었지만, 1920년대 내내 방첩 활동에서 꾸준한 성과를 냈다. MI5라는 명칭은 이 시기에 붙여진 것으로, 당시 정보국 내에서 ‘제5부서(section five)’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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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침투
- 1920년대 후반, 감시 작전 중 MI5는 런던 경찰청 소속의 특별수사대가 소련의 정보기관에 침투당한 사실을 밝혀내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 이후, 국내 전복 활동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MI5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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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의 싸움
- 193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산되자 MI5는 나치 독일의 런던 대사관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고, 반나치 성향의 독일 외교관 볼프강 추 푸틀리츠(Wolfgang zu Putlitz)로부터 히틀러의 전쟁 계획 및 독일 대사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동향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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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감시
- 같은 시기 MI5는 영국 내 파시스트 단체, 특히 오스왈드 모슬리가 이끄는 ‘영국 파시스트 연합(British Union of Fascists)’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시를 진행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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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프로젝트, 스파이 검거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MI5는 뛰어난 첩보 작전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맨해튼 프로젝트 정보를 소련에 넘긴 클라우스 푹스(Klaus Fuchs)를 적발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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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5인조 스파이 스캔들
- 하지만 MI5 역사에서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는 '케임브리지 파이브'로 알려진 소련 첩자 그룹을 제때 밝혀내지 못한 점이다. 가이 버제스(Guy Burgess), 킴 필비(Kim Philby), 도널드 맥클린(Donald Maclean), 앤서니 블런트(Anthony Blunt), 존 케언크로스(John Cairncross) 등은 모두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활동한 소련 스파이였으며, 이들 중 누구도 간첩죄로 기소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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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사건
- 그러나 1961년, 소련 간첩 5명이 연루된 ‘포틀랜드 스파이 사건(Portland Spy Ring)’이 밝혀지며 MI5는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이 조직을 이끌었던 코논 몰로디(Konon Molody)는 ‘고든 론스데일(Gordon Lonsdale)’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KGB 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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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내 테러 위협 대응
- 냉전이 종식된 후 MI5는 북아일랜드 분리주의 세력의 활동과 국내 테러 위협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테러 대응 작전은 MI5의 핵심 임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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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통신본부와 협력
- 영국의 또 다른 정보기관인 GCHQ(정부 통신본부)는 오랫동안 MI5 및 MI6와 긴밀하게 협력해왔다. 그렇다면 MI6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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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 - 비밀정보국
- MI6, 공식 명칭으로는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S)은 영국의 대외 첩보 및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본부는 런던에 위치한 SIS 건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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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커밍 장교 (1859년~1923년)
- MI6는 1909년 MI5와 함께 비밀정보국(Secret Service Bureau)의 일부로 창설되었다. 초대 국장은 영국 해군 장교 맨스필드 커밍(Mansfield Cumming)으로, 그는 ‘C’라는 이니셜로 서명하면서 이후 MI6 국장을 상징하는 전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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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MI6
- 제1차 세계대전 동안 MI6는 유럽 내 주요 작전 거점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두고, 독일 및 점령지 벨기에 내의 첩보 활동을 지휘했다. 이들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독일 제국 해군의 해상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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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랜드 전투
- 이 시기 MI6는 군 정보국 내에서 ‘MI1(c)’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독일 해군 장교 출신 칼 크뤼거(Karl Krüger)를 첩자로 포섭하여 독일의 해군 동향, 특히 1916년 윌란 해전에서의 독일 피해 상황 등 중요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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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의 약 70% 수집
- 1917년, 커밍이 이끄는 조직은 왈테르 드베(Walthère Dewé)와 엑토르 드마르크(Hector Demarque)가 조직한 ‘라 담 블랑슈(La Dame Blanche)’라는 정보망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령지 벨기에 내에서 활동하던 독일군의 이동 정보를 연합군에 전달했으며, 전쟁 중 전 세계 연합국이 수집한 군사정보의 약 70%가 이 조직을 통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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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 요원 폴 듀크스 경 (1889년~1967년)
-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등장하고 공산국가가 수립되자, MI6는 소련으로 초점을 전환했다. MI6 요원 폴 듀크스 경(Sir Paul Dukes)은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트 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했으며, 이후 소련 공산당과 코민테른, 정치경찰에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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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국 제6부"
- 1930년대 히틀러가 집권하자 MI6는 나치 독일 견제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MI6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군 정보국 제6부(section six)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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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츨리 파크
- 1938년, SIS 국장 휴 싱클레어(Hugh Sinclair)는 블레츨리 파크를 매입했다. 이곳은 전쟁 중 정부 암호해독국(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 GC&CS) 및 SIS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후일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의 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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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국장, 스튜어트 멘지스 (1890년~1968년)
- 싱클레어가 1939년 사망한 후, 스튜어트 멘지스(Stewart Menzies)가 후임 국장이 되어 42명의 요원과 55명의 비서를 이끄는 조직을 맡았고, 전쟁 중 SIS와 GC&CS의 대대적인 확장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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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마들렌 푸르카드 (1909년~1989년)
- 제2차 세계대전 기간 MI6는 다시 왈테르 드베와 엑토르 드마르크의 도움을 받아 ‘클라랑스 조직(Service Clarence)’을 벨기에에 설립했으며, 프랑스 점령지에서는 프랑스 저항단체, 레지스탕스의 지도자 마리-마들렌 푸르카드(Marie-Madeleine Fourcade)가 이끄는 ‘얼라이언스’ 조직과 협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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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와 CIA
-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MI6는 미 정보기관 OSS(전략사무국) 요원들을 훈련시켰으며, 1948년 OSS의 후신인 CIA가 창설된 후 두 기관은 냉전 기간 동안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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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실패
- 그러나 MI6는 '케임브리지 5인조' 스파이 사건이 드러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중 한 명인 킴 필비(Kim Philby)는 MI6 내부에서 활동하던 소련 스파이로, 1963년 소련으로 망명하면서 조직의 작전이 광범위하게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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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저항 세력 지원
- 냉전 동안 MI6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저항세력을 지원했으며, 전체 작전의 규모는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1990년대 이전까지 MI6의 활동은 영국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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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강화
- 1989년 ‘보안국법(Security Service Act)’이 통과되면서 처음으로 MI5의 법적 지위가 공식화되었고, 1994년 ‘정보기관법(Intelligence Services Act)’을 통해 MI6와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의 존재도 공식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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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철저히 보호되는 MI6
- 하지만 MI6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MI5보다 훨씬 더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검열 권한도 있으며, 외무부에 직접 보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출처:
(MI5 - The Security Service) (SIS) (Britannica) (The National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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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첩보국, MI5와 MI6는 무엇이 다를까?
- 영국에는 두 개의 주요 첩보 기관이 존재한다. 바로 MI5와 MI6이다. 이 두 기관은 20세기 초, 독일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영국 제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후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기간 동안,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영국의 안보를 지켜왔다. 특히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 주된 감시 대상이 되었다. MI5와 MI6는 모두 ‘국가 방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지만, 운영 방식과 역할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과연 MI5와 MI6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영국의 은밀한 정보기관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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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5 - 보안국
- MI5, 공식 명칭으로는 보안국(Security Service)은 영국의 국내 방첩 및 안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관이다. 본부는 런던 중심부의 템스 하우스(Thames House)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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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국장, 프랜시스 월싱엄 경 (1532년~1590년경)
- MI5의 전신은 1569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수석 비서였던 프랜시스 월싱엄 경(Sir Francis Walsingham)이 창설한 비밀 정보 조직으로, 그는 흔히 여왕의 "첩보국장(spymaster)"으로 불리며 현대 정보활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활동은 대외 첩보뿐 아니라 국내 보안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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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논 켈 대령 (1873년~1942년)
- 현대적인 형태의 MI5는 1909년, 버논 켈(Vernon Kell) 대령(후에 소장)의 지휘 아래 '비밀정보국(Secret Service Bureau)'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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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MI5
-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MI5는 적국의 스파이 혹은 용의자들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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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군 예비 장교
- 이 시기 체포된 인물 중에는 독일 제국 해군의 예비 장교였던 칼 한스 로디(Carl Hans Lody)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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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처형
- 그는 ‘찰스 잉글리스(Charles Inglis)’라는 가명을 사용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간첩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발각되어 ‘전쟁 반역죄(war treason)’로 기소되었다.그는 런던에서 열린 군사재판(사진)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1914년 11월 6일에 처형되었다. 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영국 내에서 적국 간첩에 대해 공개 재판이 이루어진 유일한 사례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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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시기
- 전쟁 직후 MI5는 인력 감축을 겪었지만, 1920년대 내내 방첩 활동에서 꾸준한 성과를 냈다. MI5라는 명칭은 이 시기에 붙여진 것으로, 당시 정보국 내에서 ‘제5부서(section five)’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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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의 침투
- 1920년대 후반, 감시 작전 중 MI5는 런던 경찰청 소속의 특별수사대가 소련의 정보기관에 침투당한 사실을 밝혀내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 이후, 국내 전복 활동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MI5로 이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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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의 싸움
- 1930년대 유럽에서 파시즘이 확산되자 MI5는 나치 독일의 런던 대사관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고, 반나치 성향의 독일 외교관 볼프강 추 푸틀리츠(Wolfgang zu Putlitz)로부터 히틀러의 전쟁 계획 및 독일 대사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의 동향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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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스트 감시
- 같은 시기 MI5는 영국 내 파시스트 단체, 특히 오스왈드 모슬리가 이끄는 ‘영국 파시스트 연합(British Union of Fascists)’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시를 진행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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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프로젝트, 스파이 검거
- 제2차 세계대전 동안 MI5는 뛰어난 첩보 작전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맨해튼 프로젝트 정보를 소련에 넘긴 클라우스 푹스(Klaus Fuchs)를 적발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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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임브리지 5인조 스파이 스캔들
- 하지만 MI5 역사에서 가장 큰 실패 중 하나는 '케임브리지 파이브'로 알려진 소련 첩자 그룹을 제때 밝혀내지 못한 점이다. 가이 버제스(Guy Burgess), 킴 필비(Kim Philby), 도널드 맥클린(Donald Maclean), 앤서니 블런트(Anthony Blunt), 존 케언크로스(John Cairncross) 등은 모두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활동한 소련 스파이였으며, 이들 중 누구도 간첩죄로 기소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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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사건
- 그러나 1961년, 소련 간첩 5명이 연루된 ‘포틀랜드 스파이 사건(Portland Spy Ring)’이 밝혀지며 MI5는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 이 조직을 이끌었던 코논 몰로디(Konon Molody)는 ‘고든 론스데일(Gordon Lonsdale)’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KGB 요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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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내 테러 위협 대응
- 냉전이 종식된 후 MI5는 북아일랜드 분리주의 세력의 활동과 국내 테러 위협에 대한 수사를 전담하게 되었으며, 지금도 테러 대응 작전은 MI5의 핵심 임무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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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통신본부와 협력
- 영국의 또 다른 정보기관인 GCHQ(정부 통신본부)는 오랫동안 MI5 및 MI6와 긴밀하게 협력해왔다. 그렇다면 MI6는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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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 - 비밀정보국
- MI6, 공식 명칭으로는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S)은 영국의 대외 첩보 및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본부는 런던에 위치한 SIS 건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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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스필드 커밍 장교 (1859년~1923년)
- MI6는 1909년 MI5와 함께 비밀정보국(Secret Service Bureau)의 일부로 창설되었다. 초대 국장은 영국 해군 장교 맨스필드 커밍(Mansfield Cumming)으로, 그는 ‘C’라는 이니셜로 서명하면서 이후 MI6 국장을 상징하는 전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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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MI6
- 제1차 세계대전 동안 MI6는 유럽 내 주요 작전 거점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두고, 독일 및 점령지 벨기에 내의 첩보 활동을 지휘했다. 이들의 핵심 임무 중 하나는 독일 제국 해군의 해상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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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틀랜드 전투
- 이 시기 MI6는 군 정보국 내에서 ‘MI1(c)’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독일 해군 장교 출신 칼 크뤼거(Karl Krüger)를 첩자로 포섭하여 독일의 해군 동향, 특히 1916년 윌란 해전에서의 독일 피해 상황 등 중요한 정보를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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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보의 약 70% 수집
- 1917년, 커밍이 이끄는 조직은 왈테르 드베(Walthère Dewé)와 엑토르 드마르크(Hector Demarque)가 조직한 ‘라 담 블랑슈(La Dame Blanche)’라는 정보망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점령지 벨기에 내에서 활동하던 독일군의 이동 정보를 연합군에 전달했으며, 전쟁 중 전 세계 연합국이 수집한 군사정보의 약 70%가 이 조직을 통해 수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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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 요원 폴 듀크스 경 (1889년~1967년)
-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등장하고 공산국가가 수립되자, MI6는 소련으로 초점을 전환했다. MI6 요원 폴 듀크스 경(Sir Paul Dukes)은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트 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했으며, 이후 소련 공산당과 코민테른, 정치경찰에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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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국 제6부"
- 1930년대 히틀러가 집권하자 MI6는 나치 독일 견제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 MI6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군 정보국 제6부(section six)였던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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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츨리 파크
- 1938년, SIS 국장 휴 싱클레어(Hugh Sinclair)는 블레츨리 파크를 매입했다. 이곳은 전쟁 중 정부 암호해독국(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 GC&CS) 및 SIS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후일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의 전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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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국장, 스튜어트 멘지스 (1890년~1968년)
- 싱클레어가 1939년 사망한 후, 스튜어트 멘지스(Stewart Menzies)가 후임 국장이 되어 42명의 요원과 55명의 비서를 이끄는 조직을 맡았고, 전쟁 중 SIS와 GC&CS의 대대적인 확장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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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마들렌 푸르카드 (1909년~1989년)
- 제2차 세계대전 기간 MI6는 다시 왈테르 드베와 엑토르 드마르크의 도움을 받아 ‘클라랑스 조직(Service Clarence)’을 벨기에에 설립했으며, 프랑스 점령지에서는 프랑스 저항단체, 레지스탕스의 지도자 마리-마들렌 푸르카드(Marie-Madeleine Fourcade)가 이끄는 ‘얼라이언스’ 조직과 협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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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6와 CIA
-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자 MI6는 미 정보기관 OSS(전략사무국) 요원들을 훈련시켰으며, 1948년 OSS의 후신인 CIA가 창설된 후 두 기관은 냉전 기간 동안 긴밀한 공조 관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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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실패
- 그러나 MI6는 '케임브리지 5인조' 스파이 사건이 드러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그중 한 명인 킴 필비(Kim Philby)는 MI6 내부에서 활동하던 소련 스파이로, 1963년 소련으로 망명하면서 조직의 작전이 광범위하게 유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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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저항 세력 지원
- 냉전 동안 MI6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저항세력을 지원했으며, 전체 작전의 규모는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1990년대 이전까지 MI6의 활동은 영국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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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성 강화
- 1989년 ‘보안국법(Security Service Act)’이 통과되면서 처음으로 MI5의 법적 지위가 공식화되었고, 1994년 ‘정보기관법(Intelligence Services Act)’을 통해 MI6와
영국 정부통신본부(GCHQ)의 존재도 공식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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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철저히 보호되는 MI6
- 하지만 MI6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MI5보다 훨씬 더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대한 검열 권한도 있으며, 외무부에 직접 보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출처:
(MI5 - The Security Service) (SIS) (Britannica) (The National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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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첩보국, MI5와 MI6는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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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두 개의 주요 첩보 기관이 존재한다. 바로 MI5와 MI6이다. 이 두 기관은 20세기 초, 독일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영국 제국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에 설립되었다. 이후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 기간 동안,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작전을 수행하며 영국의 안보를 지켜왔다. 특히 냉전 시기에는 소련이 주된 감시 대상이 되었다.
MI5와 MI6는 모두 ‘국가 방어’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지만, 운영 방식과 역할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한다. 과연 MI5와 MI6는 어떤 점에서 다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영국의 은밀한 정보기관들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파헤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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