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에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체포하는 작전을 펼친 모사드 요원 라피 이탄(Rafi Eitan)은 역대 가장 대담하고 논란이 되었던 정보 작전 가운데 하나를 계획한 인물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으며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죄를 받았다. 아이히만은 1962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진을 통해, 라피 이탄과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나치의 상급돌격대지도자(SS-Obersturmbannführer)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조직한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간부였던 라파엘 "라피" 이탄은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하는 모사드 작전을 지휘했다.
(Photo: Wikimedia/CC BY-SA 3.0)
1942년 1월 20일, 상급 나치 SS 장교들이 유대인들을 처리하기 위한 "마지막 해결책'을 수행하기 위해 반제에 있는 건물에 보여 회담을 했다. 아이히만은 이 회담에 참석해 내용을 녹음했다. 이 건물은 현재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및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Photo: Wikimedia/CC BY-SA 3.0)
회담이 끝난 뒤, 아이히만의 직접적인 감독 아래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로 끌고 가는 대규모 계획이 시작되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들에 대한 정보 수집, 재산 압수 및 기차 배치 계획을 맡았다.
전쟁 끝에, 아이히만은 미군에 포획되었으나 나중에 탈출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기 전인 1950년까지 독일에서 살았다.
나치 동조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이히만은 비밀스럽게 이탈리아의 제노바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배를 탄 그는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짜 이름이 적힌 국제 적십자 여권을 소지한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거처를 옮겨 10년 동안 거주했다.
이스라엘 정보 기관인 모사드는 아이히만의 소재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나치 상급자를 납치해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이 계획은 마치 청신호와 같았다. 코드 네임 "피날레 작전"은 라피 이탄에 의해 실행되었다.
아이히만은 1960년 11월 모사드 기관의 요원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길거리에서 납치되었다. 비행기에 태워져 아르헨티나를 떠나게 된 아이히만은 5월 22일에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사진은 전세계에 라피 이탄의 작전에 관한 메시지를 보낼때 사용된 전신 타자기이다.
1960년 8월 8일에 작성된 이스라엘 공식 경찰 문서는 나치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남긴 지문과 서명을 보여준다.
전세계가 아이히만의 납치에 경악했다. 아홉 달 뒤에 그는 법정에 출석해 인권에 반하는 범죄, 전쟁 범죄, 유대인에 반하는 범죄 및 범죄 조직의 구성원 등 15개에 달하는 범죄 혐의를 받았다.
이 재판은 세 명의 판사(모셰 랜도, 벤자민 하레비 및 잇자크 라베)에 의해 주도되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가 저지른 잔학한 행위에 대한 개인적 책임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무죄라고 느끼면서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961년 12월, 아이히만은 유죄를 받았으며 3일 뒤에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평결 다음에 아얄론 교도소의 마당을 산책하고 있는 아이히만이다.
(Photo: Wikimedia/CC BY-SA 3.0)
아돌프 아이히만은 교도수에 수감되어 있는 동안 상세한 내용이 적힌 일기를 썼다.
그의 노트는 특히 나치 정권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과 그 계획을 실행한 것에 대한 오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이히만의 서명은 오른쪽 밑에 있으며 서명 날짜는 1961년 9월 6일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의 변호팀은 항소를 제기했으며 유죄를 받은 죄인은 심지어 손으로 쓴 간청문에서 관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1962년 6월 1일에 교수형을 당했다. 교수형을 집행한 라피 이탄은 아이히만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전했다. "당신들 모두가 나를 뒤따르길 희망한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기록'을 집필해 1963년에 출간했다. 그녀는 아이히만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말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이곳은 아돌프 아이히만과 다른 나치 수뇌부들이 유대인 최종 해결책을 계획한 장소이다.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남아있다.
(Photo: Flickr/CC BY-NC 2.0)
관람객들은 반제 회담에서 작성된 원본 문서들과 참석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또한 유대인 처형에 대한 역사를 들려주는 시청각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나치즘에 대하 알 수 있는 멀티미디어 센터는 역사에 관심있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방탄 유리로 이루어진 이 부스에는 아이히만의 흔적이 남아있다. 나치 시절의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물건들이 후대를 위해 보존되고 있다.
(Photo: Flickr/CC BY-NC 2.0)
2011년 베를린에서 사람들이 독일 나치와 홀로코스트 조직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한 전시회를 보고 있다.
한 직원이 2011년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바솀 홀로코스트 역사 박물관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한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설치물 작업을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하는데 사용된 물건들이 2011년 예루살렘에 있는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 전시되었다.
모사드에 의해 납치된 아돌프 아이히만의 이야기는 미국의 배우 로버트 듀발(사진)이 출연한 영화 '아이히만을 체포한 남자' 및 벤 킹즐리가 출연한 영화 '오퍼레이션 피날레'를 포함해 여러편의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정보 요원으로 활약했던 라피 이탄은 2006년에 연금업무부 장관으로 정치계에 발을 들였으며 2009년에 그만두었다. 라피 이탄은 또한 조각에 능력이 있어서 약 100점 이상의 조각품을 만들었다. 그는 2019년 3월 23일에 향년 92세로 텔 아비브에서 세상을 떠났다.
라피 이만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납치 사건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게 납치되었다
라이프 스타일 라피 이탄
1960년에 나치 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체포하는 작전을 펼친 모사드 요원 라피 이탄(Rafi Eitan)은 역대 가장 대담하고 논란이 되었던 정보 작전 가운데 하나를 계획한 인물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였으며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어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죄를 받았다. 아이히만은 1962년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진을 통해, 라피 이탄과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