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의 선구적인 비전에서 출발한 벤틀리 모터스는 오늘날 4,000명이 넘는 인재들과 함께 정교한 소재로 완성도 높은 자동차를 만들어 오고 있다. 하지만 벤틀리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자동차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1920년대의 혁신적인 기술은 벤틀리를 새로운 엔지니어링의 지평으로 이끌었으며, 오늘날의 오너들 또한 벤틀리의 대담한 유산을 한 번의 인상적인 드라이브를 통해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2020년, 벤틀리는 ‘Beyond100+’라는 야심찬 선언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지속 가능성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럭셔리의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벤틀리 자동차를 제작하는 장인들과 이를 운전하는 오너들 사이의 유대는 그야말로 비범한데...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정점, 벤틀리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1919년 1월 20일, 월터 오웬 벤틀리(Walter Owen Bentley)는 런던에서 벤틀리 모터스(Bentley Motors)를 설립했다. 설립 후 불과 6개월 만에 재정 위기에 직면했으나, 회사는 같은 이름으로 재탄생하며 그의 끈기와 비전을 입증하였다.
W.O. 벤틀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항공기 엔진 두 개를 설계하며 속도와 엔지니어링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1919년 11월, 벤틀리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차량인 3리터 EXP1은 런던 모터쇼에서 큰 주목을 받게된다.
당시 이 차량은 획기적인 4기통 엔진과 뛰어난 핸들링, 제동 성능으로 시속 160km에 달하는 속도를 기록했다.
1921년 9월, 북런던 크리클우드(Cricklewood) 공장에서 첫 대량생산 차량이 고객에게 인도되었고, 1922년까지 약 150대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생산 비용 상승은 매출 증가를 따라잡지 못했고, 벤틀리의 엔지니어링 재능은 경영 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한계를 보였다.
1924년, 그는 6.5리터 모델 개발에 착수했으나, 1926년 개발을 마쳤음에도 회사는 다시 한번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 사업가이자 자동차 애호가였던 울프 바르나토(Woolf Barnato)가 회사를 인수하며 벤틀리 모터스를 구원했고, 벤틀리는 회사의 매니징 디렉터로 남게 되었다.
1929년에는 일시적인 흑자를 기록했지만, 대공황과 과도한 비용 지출로 인해 회사는 1931년 7월 두 번째 파산을 맞았다. 결국 1931년 11월, 롤스로이스(Rolls Royce)가 벤틀리 모터스를 인수했다.
1930년대 동안 벤틀리는 포디즘(Fordism) 생산 방식을 도입하여 생산 비용 절감에 나섰으며, 부품 표준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고성능 중심의 브랜드 이미지는 점차 정제된 장인정신 중심의 브랜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엔진과 섀시는 벤틀리 전용 설계로 유지되며 독립성을 일부 유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회사는 점차 모델 통합 정책을 따르며 브랜드 정체성을 희석시켰다. 1946년 영국의 크루(Crewe) 공장에서 생산된 MK VI는 1951년 단종되었고, 롤스로이스 실버 던(Silver Dawn)과 거의 동일한 모델이 되었다.
이후 30여 년간 벤틀리는 사실상 롤스로이스 파생 모델만을 생산하며 브랜드의 존재감이 약화되었지만, 고성능을 향한 비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52년, R-타입 컨티넨탈은 최고 속도 185km/h, 4인 탑승 시에도 160km/h로 주행할 수 있는 성능을 선보이며 단 208대만 생산되었고, 이후 벤틀리의 GT 개념에 기준을 세웠다.
1980년, Vickers plc가 롤스로이스 모터카 회사를 인수하며, 뮬산 터보(Mulsanne Turbo 1982)를 시작으로, 벤틀리는 다시 한번 부흥의 계기를 맞는다.
1984년 벤츠, BMW와 경쟁하기 위해 벤틀리 E8을 출시했고, 1985년에는 터보 R이 등장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스포츠 헤리티지를 되살린 벤틀리는 라인업을 확장하고 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불과 10년 만에 벤틀리는 성능과 럭셔리를 결합한 1990년대 쿠페를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브랜드 이미지는 폭스바겐 그룹의 인수로 더욱 견고해졌다.
2002년 9월, 벤틀리 모터스는 정식으로 '벤틀리 모터스 Ltd.'로 개명되었으며, 프로토타입 테스트 및 V8 엔진 생산 등 사내 핵심 기술력을 다시금 회복하였다.
폭스바겐의 새로운 오너십 아래, 1999년부터 2003년까지 폭스바겐은 약 11억 달러를 투자하여 공장을 현대화하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여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BMW 엔진을 사용하던 벤틀리 아나지 그린라벨은 불과 1년 만에 벤틀리 고유의 V8 엔진을 장착한 레드라벨로 재출시되었고, 서스펜션 강화, 뒷좌석 공간 확대, 출력 향상 등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그 결과, 2000년 벤틀리 판매량은 50%나 급증하게된다.
2002년 디트로이트에서 공개된 아나지 T(Arnage T)는 폭스바겐의 기술력이 접목된 2년간의 개발 끝에 탄생한 모델이다. 강화된 디자인과 업그레이드된 V8 엔진은 456마력의 출력을 자랑하며, 시속 100km까지 단 5.5초 만에 도달하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후 벤틀리의 진정한 변곡점이 된 모델은 콘티넨탈 GT(Continental GT)였다. 영국의 크루에서 디자인되고 생산된 이 모델은 벤츠와 포르쉐 사이의 시장을 공략하며 새로운 고객층을 확보했고, 벤틀리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중 고급 시장 진입을 실현하였다.
콘티넨탈 GT를 위해 특별한 조립 시설이 마련되었으며, 전통 장인정신과 최첨단 기술이 융합되었다. 차체는 독일 츠비카우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 제작되어 영국으로 운송되었고, 1대 생산에 소요된 시간은 150시간으로 아나지의 400시간에 비해 크게 단축되었다
2002년 파리 모터쇼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첫선을 보인 후, 2003년 정식 생산 모델이 15만 달러 (약 2억 원)의 출시가로 선보였다. 이 쿠페는 고급스러움, 수작업의 정교함, 그리고 속도를 완벽하게 결합하여 젊은 고객층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였다.
12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한 콘티넨탈 GT는 무게 2톤의 차체를 최고 시속 320km까지 끌어올리며 그 성능을 입증했다. 이 모델은 브랜드의 미래를 굳건히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2007년, 브룩랜즈(Brooklands)는 1993년 데뷔 이후 다시 등장하였다. 이 쿠페는 벤틀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V8 엔진을 탑재해 최고 속도 296km/h를 기록하며 고성능 라인의 정점을 찍었다.
플라잉 스퍼(Flying Spur)는 벤틀리의 4도어 세단으로, 성인 4인을 위한 최고급 안락함을 제공하도록 설계되었다. 동급 최고의 가속력과 민첩한 핸들링, 전자식 AWD 시스템을 갖춘 이 모델은 퍼포먼스를 재정의했으며, 벤틀리 특유의 정교한 실내 마감까지 갖췄다.
2017년 출시된 뮬산(Mulsanne)은 2010년형을 대대적으로 리디자인한 모델로, 수직 스테인리스 그릴과 넓고 낮은 자세로 벤틀리의 정점을 상징하였다. 이 모델은 현대적인 디자인과 장인정신의 절정을 표현하였다.
오늘날 벤틀리는 전동화 미래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 신형 콘티넨탈 GT 스피드(Continental GT Speed)는 '울트라 퍼포먼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탑재해, V8 엔진의 힘에 전기 토크를 더하여 새로운 차원의 주행 경험을 선사한다.
SUV 라인업에서는 벤테이가(Bentayga)가 중심을 이룬다. V8 가솔린 또는 V6 하이브리드 엔진을 선택할 수 있으며, 최첨단 운전자 보조 기술과 연결 서비스, 다양한 시트 구성(4인승, 4+1, 5인승)을 통해 럭셔리 SUV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뮬리너(Mulliner)는 자동차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벤틀리의 비스포크 전문 라인으로, 고객 맞춤형 디자인, 특수 기능, 전용 코치빌트 모델을 제작하며 벤틀리 럭셔리의 정점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벤틀리의 Beyond100+ 전략은 브랜드의 중심에 지속 가능성을 두고 있다. 이는 전통적 럭셔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친환경적이며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벤틀리의 의지를 보여준다. 이 전략은 영속적인 품격, 환경적 책임,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럭셔리 모빌리티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여정의 핵심이다.
출처: (Bentley Motors) (Volkswagen Group) (Sasso Automotive)
4천 장인의 손길, 벤틀리의 100년 헤리티지
시대를 초월한 가치- 사람, 혁신, 그리고 새로운 럭셔리의 기준
라이프 스타일 자동차
1919년, 월터 오웬 벤틀리의 선구적인 비전에서 출발한 벤틀리 모터스는 오늘날 4,000명이 넘는 인재들과 함께 정교한 소재로 완성도 높은 자동차를 만들어 오고 있다. 하지만 벤틀리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자동차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1920년대의 혁신적인 기술은 벤틀리를 새로운 엔지니어링의 지평으로 이끌었으며, 오늘날의 오너들 또한 벤틀리의 대담한 유산을 한 번의 인상적인 드라이브를 통해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2020년, 벤틀리는 ‘Beyond100+’라는 야심찬 선언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지속 가능성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럭셔리의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벤틀리 자동차를 제작하는 장인들과 이를 운전하는 오너들 사이의 유대는 그야말로 비범한데...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정점, 벤틀리의 역사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