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인들이 정복하지 못한 땅
- 로마 제국은 역사를 통틀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며 역대 가장 크고 강력한 문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로마의 권위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은 로마의 군대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에 따라 이 영토는 제국의 손이 닿지 않았다. 현대의 아일랜드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로마가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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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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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30 Fotos
권력에 대한 상징적인 진술
- 집으로 돌아온 아마니레나스는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짓밟히기 위해 아우구스투스의 돌 머리를 궁전 계단 아래에 묻었다. 이는 로마에 굴욕을 안겨주고 쿠시테 전사들과 수년간의 격렬한 충돌을 촉발한 상징적인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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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30 Fotos
최전선의 리더
- 아마니레나스는 최전선에서 싸우며 병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전장 부상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존재는 로마인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고, 제국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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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30 Fotos
승리와 주권 확보
- 기원전 21년, 아마니레나스의 회복력이 승리했으며, 이집트 총독은 이것을 인정했다. 사모스 조약은 쿠시에 주권을 부여했다. 로마인들은 다시는 이집트 정복을 시도하지 않았고, 쿠시는 수세기 동안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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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30 Fotos
스코틀랜드
- 칼레도니아, 즉 현대의 스코틀랜드는 로마군이 정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세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지휘관들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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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30 Fotos
하드리아누스의 벽을 뛰어넘는 것
-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로마군은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넘어 안토니누스 성벽까지 진격했다. 기원전 140년 안토니누스 비오 황제가 건설한 이 성벽은 로마의 북쪽 국경을 표시했지만 별다른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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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30 Fotos
칼레도니아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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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30 Fotos
이란
- 현대의 이란과 이라크를 아우르는 로마와 파르티아의 전쟁은 로마 제국이 형성되기 전에 시작되어 파르티아가 멸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두 제국은 네 차례의 주요 분쟁 주기에 걸쳐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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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30 Fotos
로마에게 굴욕을 준 파르티아
- 파르티아는 로마 장군 크라수스가 패배하고 처형된 카르해 전투에서 로마에 거듭 굴욕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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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30 Fotos
트라야누스의 정복과 짧은 승리
- 기원전 116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해 반란이 일어나고 그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가 로마군을 철수하면서 로마 점령 기간은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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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30 Fotos
파르티아의 몰락
- 로마의 후퇴는 동쪽에서 로마의 야망을 종식시켰다. 파르티아는 결국 로마가 아니라 사산 제국을 건국한 페르시아의 반란군 아르다시르에게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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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30 Fotos
독일
- 독일을 정복하려는 로마의 야망은 지속적인 실패에 직면했다. 게르만 부족은 로마의 팽창에 저항했고, 서기 410년 로마를 축출(사진)한 것은 상징적인 운명의 전환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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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30 Fotos
좌절
- 수세기 동안 로마는 게르만 부족과 충돌하여 무역을 방해하고 황제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패배를 겪었다. 이러한 좌절은 북쪽 국경에 대한 로마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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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30 Fotos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 서기 9년, 로마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게르만의 지도자 아르미니우스는 로마 군단 3개를 전멸시키고 사령관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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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30 Fotos
로마의 보복과 후퇴
- 로마의 사령관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는 복수를 노렸지만 게르만 영토에 대한 로마의 지배력은 사라졌다.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벌어진 참패로 로마는 라인강 너머의 땅을 절대 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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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30 Fotos
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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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30 Fotos
예멘에 대한 로마의 야망
- 기원전 2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번영하는 땅을 로마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아엘리우스 갈루스에게 아라비아 펠릭스를 향해 진군하라고 명령했다. 갈루스는 나바타에 출신인 실라에우스의 안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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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 30 Fotos
의도
- 조국인 나바타에에 충성한 실라에우스는 갈루스를 이끌고 예멘의 가장 혹독한 사막을 통과하여 로마 군대의 힘을 약화시키고 나바타에의 무역 이익을 보호하는 척박한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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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30 Fotos
실패한 침공
- 질병으로 지치고 굶주리고 쇠약해진 갈루스의 군대는 예멘에 도착해 싸울 수 없었다. 그들은 패배로 후퇴했고 아라비아 펠릭스는 정복할 수 없었고 로마의 통제에서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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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30 Fotos
아일랜드
- 로마인들은 아일랜드를 '영원한 겨울의 땅'이라는 뜻의 히버니아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마음 내키지 않는 땅에 붙여진 마음 내키지 않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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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 30 Fotos
아일랜드에 대한 아그리콜라의 관심
- 서기 77년부터 84년까지 브리타니아의 총독이었던 로마 장군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는 아일랜드 침공을 고려했다. 그는 단 한 군단으로 히버니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아일랜드 왕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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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 30 Fotos
정복되지 않은 아일랜드
- 아그리콜라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침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아그리콜라가 잠시 상륙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아일랜드를 성공적으로 점령한 로마 군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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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 30 Fotos
아르메니아
- 로마는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3년간의 짧은 점령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산악 지형과 정치적 복잡성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복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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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 30 Fotos
로마와 파르티아의 줄다리기
-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전략적 위치는 두 제국 모두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면서 아르메니아를 정치적 상으로 만들었다. 로마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 군사 정복 대신 외교를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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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30 Fotos
로마의 영향
- 로마는 직접 점령하는 대신 가신 군주를 설치하여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려고 했다. 란다이아 조약에 따라 파르티아 왕자는 아르메니아를 통치할 수 있었지만 로마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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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 30 Fotos
혼란에 휩싸인 아르메니아
- 로마의 영향력 아래 안정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의 분쟁에 계속 휘말렸다. 두 제국 사이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아르메니아는 종종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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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 30 Fotos
폴란드
- 로마 시대에 오늘날의 폴란드에는 프셰보르스크라는 민족이 거주했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이 지역의 부족 연맹인 루기이족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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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 30 Fotos
정복을 위한 동맹
- 로마인들은 루기이족 정복을 시도하기보다는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서기 9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수에비족과의 전투에서 100명의 기병을 파견하여 그들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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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30 Fotos
루기이족과 반달족
- 역사학자들은 루기족이 결국 반달족과 합병했거나 반달족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달족은 나중에 제국이 붕괴되면서 로마를 점령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Mental Floss) (BBC)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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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정복하지 못한 땅
- 로마 제국은 역사를 통틀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며 역대 가장 크고 강력한 문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로마의 권위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은 로마의 군대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에 따라 이 영토는 제국의 손이 닿지 않았다. 현대의 아일랜드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로마가 정복하지 못한 지역을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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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한 상징적인 진술
- 집으로 돌아온 아마니레나스는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짓밟히기 위해 아우구스투스의 돌 머리를 궁전 계단 아래에 묻었다. 이는 로마에 굴욕을 안겨주고 쿠시테 전사들과 수년간의 격렬한 충돌을 촉발한 상징적인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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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선의 리더
- 아마니레나스는 최전선에서 싸우며 병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전장 부상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존재는 로마인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고, 제국에게 정복을 당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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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와 주권 확보
- 기원전 21년, 아마니레나스의 회복력이 승리했으며, 이집트 총독은 이것을 인정했다. 사모스 조약은 쿠시에 주권을 부여했다. 로마인들은 다시는 이집트 정복을 시도하지 않았고, 쿠시는 수세기 동안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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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30 Fotos
스코틀랜드
- 칼레도니아, 즉 현대의 스코틀랜드는 로마군이 정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세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지휘관들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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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의 벽을 뛰어넘는 것
-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로마군은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넘어 안토니누스 성벽까지 진격했다. 기원전 140년 안토니누스 비오 황제가 건설한 이 성벽은 로마의 북쪽 국경을 표시했지만 별다른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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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도니아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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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 현대의 이란과 이라크를 아우르는 로마와 파르티아의 전쟁은 로마 제국이 형성되기 전에 시작되어 파르티아가 멸망한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두 제국은 네 차례의 주요 분쟁 주기에 걸쳐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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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게 굴욕을 준 파르티아
- 파르티아는 로마 장군 크라수스가 패배하고 처형된 카르해 전투에서 로마에 거듭 굴욕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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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야누스의 정복과 짧은 승리
- 기원전 116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해 반란이 일어나고 그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가 로마군을 철수하면서 로마 점령 기간은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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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의 몰락
- 로마의 후퇴는 동쪽에서 로마의 야망을 종식시켰다. 파르티아는 결국 로마가 아니라 사산 제국을 건국한 페르시아의 반란군 아르다시르에게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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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독일을 정복하려는 로마의 야망은 지속적인 실패에 직면했다. 게르만 부족은 로마의 팽창에 저항했고, 서기 410년 로마를 축출(사진)한 것은 상징적인 운명의 전환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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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30 Fotos
좌절
- 수세기 동안 로마는 게르만 부족과 충돌하여 무역을 방해하고 황제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패배를 겪었다. 이러한 좌절은 북쪽 국경에 대한 로마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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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 서기 9년, 로마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게르만의 지도자 아르미니우스는 로마 군단 3개를 전멸시키고 사령관을 자살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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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보복과 후퇴
- 로마의 사령관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는 복수를 노렸지만 게르만 영토에 대한 로마의 지배력은 사라졌다.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벌어진 참패로 로마는 라인강 너머의 땅을 절대 통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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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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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에 대한 로마의 야망
- 기원전 2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번영하는 땅을 로마의 통제하에 두기 위해 아엘리우스 갈루스에게 아라비아 펠릭스를 향해 진군하라고 명령했다. 갈루스는 나바타에 출신인 실라에우스의 안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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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
- 조국인 나바타에에 충성한 실라에우스는 갈루스를 이끌고 예멘의 가장 혹독한 사막을 통과하여 로마 군대의 힘을 약화시키고 나바타에의 무역 이익을 보호하는 척박한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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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침공
- 질병으로 지치고 굶주리고 쇠약해진 갈루스의 군대는 예멘에 도착해 싸울 수 없었다. 그들은 패배로 후퇴했고 아라비아 펠릭스는 정복할 수 없었고 로마의 통제에서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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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 로마인들은 아일랜드를 '영원한 겨울의 땅'이라는 뜻의 히버니아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마음 내키지 않는 땅에 붙여진 마음 내키지 않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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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대한 아그리콜라의 관심
- 서기 77년부터 84년까지 브리타니아의 총독이었던 로마 장군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는 아일랜드 침공을 고려했다. 그는 단 한 군단으로 히버니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아일랜드 왕자로부터 정보를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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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되지 않은 아일랜드
- 아그리콜라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침공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아그리콜라가 잠시 상륙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아일랜드를 성공적으로 점령한 로마 군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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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 로마는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3년간의 짧은 점령을 포함한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반복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의 산악 지형과 정치적 복잡성으로 인해 지속적인 정복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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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와 파르티아의 줄다리기
-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전략적 위치는 두 제국 모두 영향력을 놓고 경쟁하면서 아르메니아를 정치적 상으로 만들었다. 로마는 아르메니아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 군사 정복 대신 외교를 자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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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영향
- 로마는 직접 점령하는 대신 가신 군주를 설치하여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려고 했다. 란다이아 조약에 따라 파르티아 왕자는 아르메니아를 통치할 수 있었지만 로마의 승인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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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에 휩싸인 아르메니아
- 로마의 영향력 아래 안정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파르티아 사이의 분쟁에 계속 휘말렸다. 두 제국 사이에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아르메니아는 종종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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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 로마 시대에 오늘날의 폴란드에는 프셰보르스크라는 민족이 거주했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이 지역의 부족 연맹인 루기이족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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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을 위한 동맹
- 로마인들은 루기이족 정복을 시도하기보다는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서기 9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수에비족과의 전투에서 100명의 기병을 파견하여 그들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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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기이족과 반달족
- 역사학자들은 루기족이 결국 반달족과 합병했거나 반달족이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반달족은 나중에 제국이 붕괴되면서 로마를 점령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출처: (Mental Floss) (BBC)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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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은 역사를 통틀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광활한 영토를 정복하며 역대 가장 크고 강력한 문명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모든 지역이 로마의 권위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은 로마의 군대에 격렬하게 저항했고, 이에 따라 이 영토는 제국의 손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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