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통령의 업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서거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그저 대선 러닝메이트, 혹은 대통령이 바쁠 때 자리에 대신 참석하는 위치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통령의 일상 업무는 그보다는 좀 더 방대하고 중요한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부통령의 실제 업무와 요직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지금 바로 클릭하여 확인해 보자.
미국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사망하면 부통령이 그 자리를 승계한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몇 차례 실제로 발생했다. 예를 들어, 존 F. 케네디(JFK), 에이브러햄 링컨, 윌리엄 맥킨리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그리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임했을 때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부통령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상원의 의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통령은 상원 표결을 감독하며, 표결이 동률일 경우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렇다. 부통령은 미국 헌법 제25조를 발동하여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를 위해 내각의 과반수 또는 의회가 임명한 위원회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증명해야 한다.
부통령은 국가 안보 문제에 관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인사들 중 일원으로 활동한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국립 동물원 등으로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기관은 미국의 주요 기관 중 하나다. 부통령은 이 기관의 명예 회원으로 연간 4번 중요한 인물들과 함께 회의에 참석한다.
부통령은 선거인단 투표의 공식 집계를 주재하고 인증하는 책임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부통령은 각 주에서 제출된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담긴 봉투를 열고 이를 공식 발표한다. 특히 부통령이 직접 선거에 출마한 경우에는 긴장감이 더해진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다.
먼저, 1860년 부통령 브레킨리지는 링컨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 후, 1960년에는 닉슨이 케네디의 승리를, 1968년에는 허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닉슨의 승리를, 2000년에는 앨 고어 가 부시의 승리를, 그리고 2025년에는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발표해야 했다.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부통령은 단 네 명뿐이다. 이들은 존 애덤스, 토머스 제퍼슨, 마틴 밴 뷰런, 그리고 조지 H.W. 부시다.
부통령 또한 탄핵될 수 있다. 대통령 탄핵 시에는 연방 대법원장이 재판을 주재하지만, 부통령을 포함한 기타 연방 공직자의 탄핵은 부통령이 주재한다.
부통령이 행정부와 정책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느냐는 대통령과 부통령 간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부통령이 대통령이 가장 의지하는 조언자로 활약했다.
더불어 부통령은 해외를 방문하며 미국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역할도 한다.
1974년이 되어서야 부통령에게 공식 거처가 제공되었으며, 워싱턴 D.C. 국립 천문대 근처, 옵서버토리 서클 1번지(Observatory Circle 1)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최초로 거주한 부통령은 월터 몬데일이었다.
1789년 당시, 초대 부통령 존 애덤스는 연간 5,000달러의 급여를 받았다. 이는 당시로서는 꽤 큰 금액이었지만, 2024년 부통령 연봉인 28만 4,600달러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1896년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부통령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내각에 자리할 것을 주장했으나, 정작 자신의 부통령인 찰스 W. 페어뱅크스에게는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최초로 자신의 부통령인 토머스 마샬을 내각 회의에 초청한 대통령이었다.
텍사스주의 도시 '달라스'는 제임스 K. 포크 대통령(1845-1849 재임) 아래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조지 달라스의 이름을 따왔다.
알래스카주의 페어뱅크스(Fairbanks) 역시 루즈벨트 행정부(1905-1909) 시기의 부통령인 찰스 페어뱅크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
"Veep"은 영어로 "Vice President"(부통령)의 줄임말로, 친근하고 비격식적인 표현이다. 한국어로는 "부통령"을 조금 더 가볍게 부르는 별칭 정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용어는 알벤 W. 바클리 부통령의 손자인 스티븐 M. 트루잇에 의해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통령직은 이론적으로 평생 유지할 수 있다.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 제한이 있지만, 부통령은 임기 제한이 없다.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부통령 존 브레킨리지는 반역죄로 기소된 후 쿠바로 도피했다. 이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왔다.
브레킨리지 외에도 반역죄로 기소된 부통령이 있었다. 에런 버러는 자신만의 국가를 세우려 한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부통령 책상에는 1940년대 이후 모든 부통령의 서명이 새겨져 있다. 상단 서랍에는 이 책상을 사용한 부통령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들어 있다.
한 상원의원은 한때 "취임식은 잘 진행되었지만, 부통령 당선자가 술에 취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고, 상원에서 망신스러운 취중 연설을 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1968년, 허버트 험프리는 야구 시즌 개막식에서 시구를 한 최초의 부통령(총 8명 중 하나)이었다. 이 전통은 2009년 조 바이든이 시구하며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부통령 찰스 도스, 린든 존슨, 해니벌 햄린은 모두 8월 27일에 태어났다.
매디슨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두 명의 부통령이 사망했다. 조지 클린턴은 1812년에, 엘브리지 게리는 재임 1년여 만에 사망했다.
1852년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을 역임한 윌리엄 R. 킹은 동성애자였다는 소문이 있다. 일부는 그가 대통령과 낭만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알벤 바클리 부통령은 72세의 나이에 38세의 제인 헤들리와 결혼했다. 그는 재임 중 결혼식을 올린 최초의 부통령이었다.
공식 행사에서 부통령의 입장을 알리는 곡은 ‘Hail, Columbia’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부통령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프랑스 간 긴장 완화에 기여한 찰스 도스, 러일전쟁 종식을 이끈 시어도어 루즈벨트, 그리고 지구온난화 문제에 기여한 앨 고어가 있다.
출처: (Ranker) (Time) (Politico) (The Atlantic)
미국 부통령, 실제로 어떤 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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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서는 대부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부통령의 업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마도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서거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 그저 대선 러닝메이트, 혹은 대통령이 바쁠 때 자리에 대신 참석하는 위치로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통령의 일상 업무는 그보다는 좀 더 방대하고 중요한데….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부통령의 실제 업무와 요직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지금 바로 클릭하여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