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넓고 가장 덜 탐사된 심해 생태계는 독특한 생물 다양성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1921년에 국제 수로 기구(IHO)가 설립된 이후, 해양 연구는 수면 아래 생생하고 역동적인 세계를 밝혀냈다.
지난 100년 동안 중요한 발견과 혁신적인 기술들이 심해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지구의 71%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여전히 대부분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며, 그 깊이의 5% 미만이 연구되었다. 이 방대한 영역은 보트, 잠수함, 소나 기술, 그리고 스쿠버 장비를 포함한 놀라운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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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는 그룹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다. 어부들에게 이는 얕은 대륙붕 너머의 바다를 의미한다. 과학자들에게 이 바다는 1,800미터가 넘는 수심으로 햇빛이 더 이상 온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열선 아래, 해저 위의 바다에서 가장 낮은 지대이다.
바다의 깊은 곳을 탐험하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영원한 어둠, 얼어붙은 기온, 표준 기압의 1,000배가 넘는 15,750psi라는 엄청난 압력으로 인해 심해는 지구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심해에서는 생명체가 번성할 수 없다고 믿었다. 200미터를 넘으면 빛이 사라진다. 수심 4,000미터에서는 기온이 영하에 가까워지고 압력이 거세져 인간은 생명체가 살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놀라운 발견으로 인해 이 개념은 깨졌다.
1868년, 스코틀랜드의 자연주의자 찰스 와이빌 톰슨 경은 왕립학회를 설득하여 북대서양에서 획기적인 심해 준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했다. 톰슨은 해양 생물학 준설선, 즉 굴착 메커니즘이 장착된 그물을 사용하여 해저를 성공적으로 긁어내어 심해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이는 생명체의 형태를 발견했다.
찰스 와이빌 톰슨 경은 H.M.S. 라이트닝호에 탑승한 동안 폐쇄 메커니즘을 추가하여 바닥을 더 잘 준설할 수 있었다. 이 중요한 수정 덕분에 그는 300 파덤(549미터) 깊이에서 해면류, 갑각류, 연체동물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을 수집하여 해양 생물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초기 심해 탐사의 성공은 해양 탐사에 대한 지지를 강화했고, 1872년 톰슨의 지휘 아래 H.M.S. 챌린저호가 진수되었다. 3년 반에 걸친 탐사 끝에 준설은 전례 없는 깊이에 도달하여 4,417종의 새로운 해양 생물을 발견하고 수백 개의 해저와 물 샘플을 수집하여 해양학의 이정표를 세웠다.
톰슨이 사망한 후 스코틀랜드의 해양학자 존 머레이 경이 탐험대의 발견을 수집하는 기념비적인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는 H.M.S. 챌린저호의 획기적인 발견을 자세히 설명하는 50권의 책을 성공적으로 출판하여 현대 해양학의 초석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8세기 바이킹은 밧줄에 납을 묶어 수심을 측정했다. 무게가 해저에 닿은 밧줄의 길이를 기록하여 각각 6피트 또는 1.8미터에 해당하는 깊이를 파덤 단위로 측정했다. 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의 해양 전문성을 보여준다.
1872년 윌리엄 톰슨 경은 톰슨 사운드 머신을 도입하여 깊이 측정을 개선했다. 로프 대신 얇은 피아노 와이어를 사용하여 장력 물레, 브레이크, 다이얼을 사용하여 와이어 길이를 기록하여 보다 정밀한 해양 깊이 측정을 달성했다. 이 혁신은 이후 해양 탐험의 핵심 도구가 되었다.
1873년부터 1874년까지 조지 벨냅 사령관은 미국 투스카로라호에 탑재된 톰슨 사운드 머신을 사용하여 전신 케이블을 따라 태평양을 탐사했다. 그의 연구는 후안 데 푸카 능선, 알류샨 해구, 일본 해구의 발견으로 이어져 해양학 지식을 크게 발전시켰다.
1912년 타이타닉 참사 이후 해양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1914년 레지널드 A. 페센덴이 페센덴 발진기를 발명했다. 이 장치는 음파와 물체의 에코를 이용해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인 에코 레인징을 활용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페센덴 발진기는 수중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개조되었다. 이 혁신은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으며, 결국 현대 음향 항법 및 거리 측정(SONAR)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623년 네덜란드인 코넬리스 드렙벨은 최초의 잠수함을 건조하여 수중 탐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혁신적인 잠수함은 나무 프레임 위에 기름칠을 한 가죽 외피를 특징으로 하며 수심 3.7~4.6미터까지 이동할 수 있어 해저 시각 참사라는 여정의 시작을 알렸다.
1800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허가를 받아 로버트 풀턴은 노틸러스 잠수함을 건조했다. 철제 갈비뼈 위에 구리판으로 된 선체에는 잠수와 상승을 위한 획기적인 밸러스트 탱크, 항해를 위한 수평 방향타, 4명의 남성과 2명의 양초가 3시간 동안 지탱할 수 있는 공기 공급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잠수함은 수면 추진용 디젤 엔진과 배터리로 구동되는 전기 모터를 결합하여 최대 2시간 동안 15노트의 속도를 달성했다. 이 설계는 1954년 USS 노틸러스가 최초의 핵 추진 잠수함이 되면서 수중 내구성과 효율성에 혁명을 일으켰다.
잠수함은 더 깊은 바다 여행을 가능하게 했지만, 인간은 장시간 물속에서 수영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했다. 긴 갈대는 원시적인 호흡관 역할을 하여 현대 스노클의 기초를 마련하고 더 가까운 수중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다.
1690년 에드먼드 핼리는 다이버들에게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공기통과 연결된 다이빙 벨을 설계했다. 이를 바탕으로 1788년 존 스미튼은 효율적인 공기 공급을 위해 수동으로 작동하는 펌프와 역류를 방지하는 밸브를 도입하여 수중 탐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1823년, 찰스 앤서니 딘은 원래 소방관들을 위해 설계한 연기 방지 헬멧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후 수중용으로 개조된 이 무거운 헬멧은 산소 호스에 연결되었지만 끈으로만 고정되어 있어 슈트에 대한 안전은 부족했다. 이는 기능적인 잠수복을 위한 중요한 단계였다.
1865년 프랑스 발명가 베누아 루쿼롤과 오귀스트 드네이루즈는 수중 호흡 장치인 에어로포어를 개발했다. 이 혁신적인 장치는 다이버가 흡입할 때만 공기를 전달하고 압력에 민감한 멤브레인을 사용하여 공기 흐름을 조절한다.
1942년 자크 이브 쿠스토와 에밀 가냥은 자동차 조절기를 획기적으로 변신시켰다. 이 발명품은 흡입 시에만 다이버에게 압축 공기를 제공하여 대형 산소 탱크로 제어된 호흡을 가능하게 했다. 이 기술로 잠수 시간을 연장하여 신비로운 깊이로 모험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첨단 기술로 인간은 극한의 조건을 가진 바다 깊은 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1977년에는 지각 아래의 마그마와 빛, 열, 유황을 방출하여 심해에 독특한 서식지를 만들어내는 심해 열수구를 발견했다.
녹색 유황 박테리아와 같은 유기체는 열수구 근처에서 유황을 먹으며 번성한다. 이러한 미생물은 거대 관벌레와 같은 더 큰 생물의 먹이사슬의 기초를 형성한다.
1980년대는 자율 수중 차량(AUV)의 발전과 함께 심해 연구의 중추적인 시기였다. 이러한 혁신은 수중 탐사의 범위, 정밀도 및 기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AUV는 해저 지도 작성과 정교한 샘플링 수행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2012년 3월 25일, 영화 제작자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탐험가인 제임스 카메론은 지구의 가장 깊은 지점까지 단독 항해를 완료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7미터 잠수정인 딥씨 챌린저호를 조종한 그는 2.5시간 만에 10,898미터 깊이의 마리아나 해구로 내려갔다.
카메론은 생물학적 샘플 수집을 어렵게 만든 기술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3시간 넘게 이 극한의 환경을 탐험했다. 그의 여정은 심해 탐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발광 생물은 영원한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만들어낸다. 유명한 예로는 긴 등쪽 줄기에 빛을 생성하는 기관을 가진 아귀가 있다. 이 빛나는 부속물을 흔들며 의심없는 먹이를 강력한 날카로운 이빨로 유인한다.
인간의 호기심은 종종 예상치 못한 응용 분야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음향 장비와 소나의 개발이다. 이 기술은 수중 물체를 탐지하는 데 필수적으로, 잠수함이 칠흑같이 어두운 수심을 안전하게 기동할 수 있게 만들었고, 원래 의도를 훨씬 뛰어넘는 발전을 보여주었다.
잠수함은 해양의 신비로운 수심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운송이라는 이중 목적을 수행한다. 한편, 다이빙 장비의 발전으로 인간은 아름다운 산호초를 감상하거나, 오랫동안 잃어버린 난파선을 발견하여 파도 아래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을 맞출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2024년 6월까지 현대의 고해상도 멀티빔 소나 시스템을 사용하여 전 세계 해저의 26.1%만이 파악되었다. 이러한 선박 탑재 기술은 해저의 상세한 이미지를 제공하지만, 대부분의 해저는 아직 정확도가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지구의 수중 지형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필요한 방대한 탐사 범위를 강조한다!
출처: (Ocean Census) (ThoughtCo) (Ocean Exploration)
인간이 도달한 가장 깊은 곳? 심해 탐사의 역사!
심해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얼마나 깊은가?
라이프 스타일 해양
지구에서 가장 넓고 가장 덜 탐사된 심해 생태계는 독특한 생물 다양성으로 오랜 세월 동안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1921년에 국제 수로 기구(IHO)가 설립된 이후, 해양 연구는 수면 아래 생생하고 역동적인 세계를 밝혀냈다.
지난 100년 동안 중요한 발견과 혁신적인 기술들이 심해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변화시켰다. 지구의 71%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여전히 대부분 탐사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며, 그 깊이의 5% 미만이 연구되었다. 이 방대한 영역은 보트, 잠수함, 소나 기술, 그리고 스쿠버 장비를 포함한 놀라운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깊은 바다의 신비를 밝히려는 열망에 이끌려, 인류는 계속해서 이 신비한 경계로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클릭으로 탐사에 동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