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오리족의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뉴질랜드 본토 원주민인 마오리족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다시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즉위는 마오리족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이 왕위에 올랐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여왕 응가 와이 호노 이 테 포 파키(Nga Wai Hono i te po Paki)는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마오리족과 그 문화를 통치하고 있다. 마오리 전통은 조화로운 노래와 강렬한 춤, 그리고 독특한 인사법을 통해 표현된다. 하지만 이 특별한 유산은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마오리족은 또 무엇으로 유명할까?이번 갤러리에서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역사와 관습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본다.
마오리족의 새로운 군주가 즉위하였다. 응가 와이 호노 이 테 포 파키 여왕은 9월 5일, 뉴질랜드 북섬 와이카토 지역의 응아루아와히아 마을에서 수천 명이 참석한 감동적인 즉위식에서 왕관을 썼다. 그녀는 전통에 따라 여러 부족의 12명의 원로들로 구성된 그룹에 의해 선택되었다.
응가 와이 호노 이 테 포 파키는 전 마오리 왕 투헤이티아 포타타우 테 페로페로 7세의 외동딸이자 막내로, 아버지의 장례식이 진행된 6일간의 탕이한가(tangihanga:마오리 전통 장례식) 마지막 날에 왕위에 올랐다.
고인의 유해는 와이카토 강으로 운구된 후, 마오리 전사들이 와카(waka:전통 카누)를 이용해 마오리의 신성한 묘지인 타우피리 산으로 옮겼다.
전국은 왕의 서거를 애도했다. 왕은 즉위 18주년을 기념한 지 며칠 만에 69세의 나이로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27세인응가 와이 호노 이 테 포 파키(Nga Wai Hono i te po Paki)는 두 번째로 어린 마오리 군주이자, 두 번째로 여왕에 오른 인물이다. 마오리 지도자들은 그녀를 "새로운 새벽"이라 칭송했다.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본토의 원주민인 폴리네시아계 민족이다. 그들의 조상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여러 섬에서 왔으며, 1300년 이전에 와카 호우루아(waka hourua:대항해용 카누)를 타고 뉴질랜드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몇 세기 동안 여러 와카 호우루아가 추가로 도착하며 뉴질랜드 곳곳에 상륙했다. 외부 세계와 고립된 이 정착민들은 작은 부족 집단으로 땅을 일구며 살아갔고,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마오리족과 유럽인 간의 첫 기록된 만남은 1642년에 이루어졌다. 네덜란드의 항해자이자 탐험가인 아벨 타스만이 이끄는 두 척의 배가 뉴질랜드 남섬 북서 해안에서 육지를 발견한 것이다. 타스만의 선단은 이미 태즈메이니아에 도착한 후, 동쪽으로 이동하여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오리족과의 첫 접촉은 비극으로 끝났다.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 나가 두 배 사이에서 노를 젓던 선원들을 공격한 마오리족 전사들에게 태즈먼 호의 선원 4명이 살해당한다.
타스만 이후 1772년에 프랑스 사략선 선장 마크조셉 마리옹 뒤 프렌이, 1796년에는 제임스 쿡 선장이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두 사람 모두 마오리 전사들과의 폭력적인 충돌을 겪었으나, 쿡은 이후 마오리족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18세기 말이 되자 마오리족은 유럽과 미국의 바다표범 사냥꾼, 고래잡이, 그리고 기독교 선교사들과 점점 더 많이 접촉하게 되었다. 대체로 평화로운 관계였지만, 19세기 초에는 몇 차례의 폭력적 충돌이 발생했다. 그중 가장 심각한 사건은 '보이드호 사건'이었다.
1809년 12월, 영국 선박 보이드 호는 퐁가로아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마오리족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의 승무원과 승객이 살해되었다. 이 공격은 선장이 지역 젊은 추장 테 아라를 학대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19세기 초, 유럽인들의 뉴질랜드 정착은 급격히 확장되었다. 많은 마오리족은 유럽인들을 서구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수단으로 여겼다. 이러한 문화와 사상의 광범위한 교류는 마오리족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도록 장려했으며, 일부는 기독교인이 되기도 했다. 1826년의 삽화는 유럽식 옷을 입은 마오리족을 묘사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건국 문서로 여겨지는 '와이탕이 조약'은 1840년에 영국 왕실과 약 540명의 마오리 추장들 간의 협정으로 작성되었다. 이 조약은 마오리족에게 영국 신민의 권리와 재산권, 부족 자치를 보장하는 대신, 영국의 주권과 뉴질랜드를 영국 제국의 식민지로 편입하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마오리족과 파케하(유럽계 뉴질랜드인) 사이에 산발적인 폭력이 이어졌으며, 결국 이른바 뉴질랜드 전쟁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 전쟁은 1845년부터 1872년까지 뉴질랜드 식민 정부 및 그 동맹 마오리족과, 반대편의 마오리족 및 그 동맹 세력 간에 벌어진 대규모 토지 몰수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었다.
이 기간 동안 '마오리 왕 운동', 영국 식민 지배에 맞서 마오리족의 단합이 시작되었다. 1858년에 창설된 이 운동은 마오리 땅의 상실을 막기 위해 영국 식민지 왕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역할을 설정하고, 마오리족을 하나의 주권 아래 통합하려는 목적이었다. 첫 번째 마오리 왕은 포타타우 테 페로페로로, 그는 1860년까지 재위했다.
마오리 문화는 마오리족의 관습, 문화적 실천, 신념을 아우른다. 마오리족의 전통 의상은 대략 1500년경의 고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오리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소 중 하나는 '홍이'이다. 홍이(hongi)는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인사 방법으로, 두 사람이 코를 맞대고 때로는 이마를 맞댄 후 악수를 나눈다.
하카(haka)로 알려진 의식 무용은 귀빈을 환영하거나 중요한 성과와 행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공연된다. 전통적으로 남녀 모두가 하카를 춘다.
마오리 문화에서 '토훈가(tohunga)'는 숙련된 사람으로 전문가, 사제 또는 치료사로의 역활을 하였다. 과거에는 토훈가가 죽은 자를 다루면 다시는 음식을 만질 수 없는 '타푸(tapu)'가 되었다. 따라서 타푸는 항상 다른 사람이 음식을 먹여줘야 했다.
마오리족은 20세기 초에 큰 문화적 변화를 겪었다. 뉴질랜드 사회는 마오리족이 파케하(Pākehā:유럽계 뉴질랜드인)의 규범에 맞추도록 압박했다. 점점 더 소외된 마오리족 인구는 문화와 함께 감소하기 시작했다.
마오리의 영향력을 되살린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 중 하나는 아피라나 응가타(Āpirana Ngata)이다. 그는 마오리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뉴질랜드 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마오리 문화와 언어를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타는 그의 얼굴이 50달러 지폐에 실리며 기념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마오리 문화는 부흥을 맞이한다. 마오리족은 두 차례 세계 대전에 특수 부대로 참전하여, 전쟁 무용으로서 하카를 자주 공연했다. (사진 참조)
오늘날 하카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이 뉴질랜드 올 블랙스 럭비팀이 경기 전에 선보이는 퍼포먼스로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홍이'는 마오리족이 손님, 심지어 왕족을 만날 때도 행하는 인사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뉴질랜드의 국경일인 와이탕이의 날은 1840년 2월 6일에 체결된 와이탕이 조약을 기념하는 날이다.
와이탕이의 날 또는 다른 특별한 날에는 항상 카파 하카(kapa haka: 노래와 춤)가 공연된다. 카파 하카는 마오리족이 일렬로 서서 노래나 구호와 함께 전통 춤을 추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마오리 문신, 즉 타모코(tāmoko)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 공동체 내에서의 위치, 역사, 그리고 혈통, 가족 관계를 상징한다.
마오리 여성들은 입술과 턱에 '모코 카우에 (moko kauae)'라 불리는 문신을 새긴다. 이는 여성이 자신의 가족(화나우,whānau)과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족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또한 공동체에서의 리더십 역할을 상징한다.
'화레누이(wharenui)'는 전통적인 마오리 집회장이자 회의 공간이다. 아름답게 조각된 목재로 장식된 이 공동체 건물은 수 세기 동안 마오리 문화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마오리족은 티노 랑아티라탕가를 자신들의 국기로 채택했다. 이 국기의 디자인은 마오리 문신과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루'(koru:고사리 새순)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새 출발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출처: (The Guardian) (Te Ara) (NewZealand.com) (RNZ) (NZ History) (Museum of New Zealand Te Papa Tongare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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