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한 사건은 최근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주최 측이 ‘즐거운 대회'라고 주장한 이 대회의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50여 년 전 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의 끝없는 갈등과 분단으로 인해 양측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사진을 통해 뮌헨 올림픽 참사로 알려진 것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972년 하계 올림픽으로 알려진 제20회 하계 올림픽 경기는 8월 26일부터 9월 11일까지 독일 뮌헨에서 열렸다.
120개국 이상에서 온 수천 명의 선수들이 주최 측이 '즐거운 대회'라고 명명한 개막식을 축하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은 이후 코놀리슈트라세 31번지에 있는 이스라엘 올림픽 팀 숙소로 진입했다.
그리고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무장 괴한들은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된 2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들은 또한 1972년 5월 30일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26명의 승객 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적군파의 안드레아스 바더와 울리케 마인호프를 독일 감옥에서 해방시키고 일본 적군파의 오카모토 코조를 해방시킬 것을 주장했다.
몇 시간 만에 사진작가, 기자, 텔레비전 제작진이 올림픽 빌리지 근처에 모였다.
서독 경찰이 생방송 TV 방송 중 인질들이 억류된 아파트 위로 진입하는 모습이 목격된 후 계획된 구조 시도가 중단되었다.
인질범들과 당국 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총격범들은 중동의 안전한 목적지로 비행할 수 있는 여객기 제공을 포함해 요구 범위를 넓혔다.
독일 협상 대표단의 수장은 내무부 장관 한스-디트리히 겐셔였다. 그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독일로 보내겠다는 이스라엘의 제안을 거절했다.
대신 이스라엘 선수들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자신을 인질로 붙잡을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도 거부되었고 무제한 몸값 제안도 거부되었다.
대회가 중단되자 무장 괴한들은 최후통첩을 보내 이스라엘과 독일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을 석방하라는 요구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마침내 9월 5일 오후 10시경, 테러리스트들은 합의에 도달했다고 믿고 인질들을 이끌고 단지 밖으로 나와 버스에 탑승해 대기 중인 헬리콥터로 이송되었다.
목적지는 올림픽 빌리지에서 서쪽으로 15마일(25km) 떨어진 퓌르스텐펠트브루크 공군 기지였다. 그곳에는 카이로로 이륙할 비행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정교하고 매우 위험한 구조 계획의 일부였다.
헬리콥터는 퓌르스텐펠트브루크에 착륙하여 곧바로 매복 공격에 들어갔다. 경찰 저격수들은 비행장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되었다.
총격범 중 두 명은 헬리콥터 중 한 대에서 내려 비행기를 점검했지만 인력이 부족한 것을 발견했다.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다시 헬리콥터로 달려갔다.
테러리스트들은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동료들에게 경고했고, 이때 서독 경찰이 그들에게 발포했다. 이어진 총격전에서 인질들은 바이에른 경찰 안톤 플리거바우어를 포함해 모두 사망했다. 테러리스트 중 5명도 사망했다.
학살 사건 이후 뮌헨은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장갑 경찰 차량이 올림픽 빌리지 전역과 시내 거리에 배치되었다.
다음 날인 9월 6일, 이스라엘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이 열리면서 올림픽 깃발이 반기 게양되었다.
살아남은 이스라엘 팀 선수들은 살해된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함께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구스타프 하이네만 독일 연방공화국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희생된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엄숙한 연설을 했다.
올림픽 경기장의 분위기는 암울했다.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인 에이버리 브런디지는 "애도의 날"을 선포하고 다음 날 올림픽이 재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소수의 테러리스트들이 올림픽 정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9월 7일 뮌헨-리엠 공항에서 이스라엘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이 사망한 동료들의 유해가 담긴 관과 함께 EL AL 특별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 사진은 선수들의 유해가 송환된 후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살해된 이스라엘 선수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들을 애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 이스라엘이 올림픽에 선수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017년 9월 6일, 1972년 올림픽 테러를 기념하는 새로운 기념관이 뮌헨에서 개관했다.
기념비는 공원의 옛 올림픽 마을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부분적으로 땅속에 잠겨 있다. 이 장소는 11명의 이스라엘인과 바이에른 경찰관 등 12명의 잔혹 행위 희생자에게 헌정되었다.
출처: (Britannica) (Jewish Telegraphic Agency)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 그날의 이야기
하계 올림픽 기간 동안 발생한 테러 공격을 회상하며
라이프 스타일 역사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한 사건은 최근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주최 측이 ‘즐거운 대회'라고 주장한 이 대회의 의미는 무의미해졌다. 50여 년 전 이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지만,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간의 끝없는 갈등과 분단으로 인해 양측에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
사진을 통해 뮌헨 올림픽 참사로 알려진 것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