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몰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널리 연구된 사건이다.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군사적 패배, 야만인의 침략, 정치적 부패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그에 못지않게 파괴적인, 또 다른 요소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제국이 붕괴하기 몇 세기 전부터 인플레이션은 조용히 진행되며 경제적 악화를 초래했고, 로마의 금융 안정성을 무너뜨리며 사회 구조를 세대에 걸쳐 약화시켰다. 로마 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무역과 조세 제도부터 군사력과 대중의 신뢰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로마의 강력한 경제와 영향력을 약화시켰을까? 제국의 화폐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이 갤러리에서 그 답을 확인해 보자.
로마 공화국이 끝나고 로마 제국이 수립되기까지 수 세기, 수십 년 동안 공화국은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영토를 확장했다. 새로운 영토가 부를 유입시켰지만, 자원은 부족했다.
공화국은 잔인한 팽창과 내부 갈등으로 특징지어졌으며, 결국 기원전 30년에 악티움 내전으로 끝났다. 이 갈등은 클레오파트라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 마크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서 벌어졌으며, 옥타비아누스는 훗날 새로운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통치 기간(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동안 로마 세계는 무력 충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제국은 비교할 수 없는 평화를 경험했다. 이 시기에 제국의 원수 정치가 만들어졌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의 확장을 늦추고 정복한 영토에서 부의 유입을 줄였다. 로마는 지속적인 전리품이 국고를 채우지 못한 채로 제국 전역의 군대 유지, 광범위한 관료제, 야심찬 건설 프로젝트 등 막대한 지출 관리에 점점 더 어려움을 겪었다.
구매력 감소에 직면한 군인들은 급여 인상을 요구했다. 제국의 지속적인 존재는 군대의 행복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정부는 의무를 다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시스템에 더 큰 부담을 주었다.
지출이 세수를 초과할 때마다 황제들은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동전을 주조했다. 제국은 여전히 채굴을 통해 풍부한 귀금속에 의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끔 과도한 지출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은 약 2세기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로마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서기 98-117년) 동안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약 5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영토에 도달했다. 그러나 영토 유지에는 상당한 군사비가 필요했다.
2세기 중반까지 군사비로 로마 예산의 70%를 소비하며 약 50만 명의 군인을 지원했다. 이 막대한 재정적 부담은 지속 불가능해졌고, 심각한 위협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로마는 경제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서기 235년, 세베루스 알렉산더 황제(사진)는 자신의 군대에 의해 암살당했고, 이에 따라 49년 동안 지속된 불안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황제의 죽음은 국민과 로마 원로원의 사랑을 받지 못한 막시미누스 트락스의 즉위로 이어졌다.
막시미누스(사진)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후, 상원의 반란이 일어났고, 막시미누스에 반대하는 다섯 명의 상원의원이 연이어 황제 선언을 했다. 이에 따라 로마의 정책과 경제는 더욱 불안정해졌다.
이 위기 동안 북쪽과 동쪽의 국경은 많은 야만족 부족의 광범위한 침략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군사비 지출이 급격히 증가했고, 전체 지방이 적의 손에 넘어지거나 버려져 중요한 세수가 사라졌다.
침략으로 로마 제국의 변두리가 찢기는 동안, 중요한 은광과 금광 자원은 고갈되기 시작했다. 로마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귀금속이 바닥나면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임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황제들은 은 함량을 대폭 줄였고, 데나리우스(군비로 사용되는 은화)의 가치는 점점 더 떨어졌다. 이에 따라 통화 공급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로마 통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가격 인상이 만연했다.
인플레이션 속에서 비용을 조달하고 부채를 갚기 위해 로마는 막대한 양의 금을 해외로 운송했다. 금 유출은 로마의 재정 비축을 약화시키고 국채를 고갈시키며 경제 회복력을 저하시켜 제국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서기 64년 초, 네로 황제는 의도적으로 동전의 은 함량을 희석하기 시작했다. 제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정치 내부자들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2세기 후반까지 데나리우스는 60%의 은 순도를 유지했다. 로마는 꾸준히 물가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사치스러운 국가 지출을 고집했다.
서기 268년에 이르자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은 0.5%에 불과했다. 군인들의 임금으로 100년 전보다 8배나 더 많은 동전이 필요했다. 밀 가격은 더욱 급등하여 200배까지 치솟았다.
황제들은 물가가 거의 1,000%나 치솟자 은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일의 대가로 금만 받는 야만인 군대를 고용했다. 그에 따라 로마의 화폐 가치는 더욱 하락했다.
화폐 가치가 없어지자 많은 로마인들은 화폐 대신 물물교환에 의존했다. 물물교환의 광범위한 부활은 중앙 권위와 통치를 약화시켰으며, 제국 전체의 경제적 통합을 깨뜨렸다.
임금 부족에 직면한 많은 군인들은 계급을 버리고 대신 도시를 약탈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반세기 동안 로마는 황제 암살, 야만인 침략, 도시 약탈, 침략자들에 의한 시민 노예화로 불안정이 지속되었다.
284년부터 305년까지 통치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1,000개 이상의 상품과 서비스의 강제적인 가격 통제로 경제 안정을 시도했다. 이 노력은 치명적으로 실패했고, 한때 0.5데나리우스였던 밀은 서기 338년에 10,000데나리우스 이상으로 치솟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존의 은화 데나리우스를 완전히 폐기하고, 새로운 은화인 아르겐테우스를 도입했다. 그러나 새로운 화폐 제도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10년 이내 무려 100%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말았다.
인플레이션으로 부유한 로마인들은 도시를 포기하고 시골 별장으로 향했고, 이로 인해 도시는 필수 수입원을 잃게 되었다. 도시는 황폐화되고 공공 서비스는 악화되었으며 도시 생활은 붕괴되었다.
인플레이션으로 로마 동전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자, 외국 상인들은 상품이나 더 안정적인 외국 동전을 선호하며 로마 화폐를 거부했다. 이러한 고립은 로마의 국제 무역을 마비시켜 경제력은 떨어졌고 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크게 약화했다.
로마 화폐는 사실상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국가는 강제 노동에 의존했다. 상인들은 제국 화폐로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국가와 군대에 직접 상품을 공급했다. 그들은 제국법에 따라 직업을 포기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인구가 빈곤과 불안에 빠지면서 국가 권력은 급격히 확장되었고 점점 더 권위주의적이 되었다. 제국의 생존은 로마의 유일한 집착이 되었고, 이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냉소적인 조언을 반영했다. "조화롭게 살고, 군대를 풍요롭게 하며, 다른 모든 사람을 무시하라."
로마 제국은 무관심 때문에 몰락했다고 한다. 5세기에 이르자 지친 로마인들은 체제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야만인 침략을 해방으로 여겼다. 역사가 조셉 테인터의 말처럼 "제국은 더 이상 존재를 감당할 수 없었다."
로마의 화폐 문제에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 그것은 전쟁이 국가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지만 안정적인 화폐에도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로마의 통화 위기는 지속적인 군사적 투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궁극적으로 억제되지 못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로마 사회를 약화시켰다. 이러한 만연한 금융 위기는 제도를 약화시키고 사회를 분열시켰으며, 이는 외부의 침략으로 타격을 받기 훨씬 전부터 로마 내부 붕괴의 발판을 마련했다.
출처: (Visual Capitalist) (Britan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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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몰락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널리 연구된 사건이다. 전통적인 해석으로는 군사적 패배, 야만인의 침략, 정치적 부패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지만, 그에 못지않게 파괴적인, 또 다른 요소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제국이 붕괴하기 몇 세기 전부터 인플레이션은 조용히 진행되며 경제적 악화를 초래했고, 로마의 금융 안정성을 무너뜨리며 사회 구조를 세대에 걸쳐 약화시켰다. 로마 화폐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무역과 조세 제도부터 군사력과 대중의 신뢰에 이르기까지 연쇄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로마의 강력한 경제와 영향력을 약화시켰을까? 제국의 화폐에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이 갤러리에서 그 답을 확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