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반유대주의 감시단체인 ADL(명예훼손방지연맹)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유대인을 겨냥한 폭력적 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아르헨티나 등이 주요 국가로 지목되었다.
유대 학교에 대한 공격부터 회당과 유대인 사업체, 그리고 개인을 향한 괴롭힘까지 그 양상도 다양하다. ADL의 마리나 로젠버그 국제 회장은 일부 유대인들이 유대교 상징물을 숨기거나 이름까지 바꾸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처음이 아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1938년 말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며 수많은 유대인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들 중 다수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는 훗날 연합군의 일원으로 승전국이 되었지만, 전쟁 초기에는 유대인 난민을 외면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사진을 통해 북미가 나치 독일에서 온 유대인 난민들을 구하기를 거부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소식을 들은 이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수천 명의 유대인 난민들이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여행하도록 주선했다. 이 난민들 중 많은 수는 어린이들이었다.
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난처를 찾지 못한 60,000명의 유대인 어린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도움을 손을 뻗었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환영받는 자유의 땅이라는 평판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원망이 조금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는 반유대주의와 외국인 혐오증이 존재했다. 많은 유대인의 사업 감각과 재정적 성공은 상당한 양의 미국인들을 질투하게 만들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비자 신청을 위한 연간 할당량은 27,000개였다. 1939년에만 미국에 125,000개의 비자가 신청되었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직면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민자 수를 늘릴 방법을 찾으려고 애썼고, 로버트 와그너 민주당 상원의원(왼쪽)과 에디스 로저스 공화당 하원의원(오른쪽)은 이 같은 취지의 법안을 마련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3%가 난민 쿼터 해제에 반대했다.
그리고 나서, 같은 해 말에 또 다른 여론 조사가 실시되었다. 정확한 질문은 "독일에서 온 난민 아이들(대부분이 유대인)을 미국 가정에서 돌보는 것과, 정부가 이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였다
결과는 놀랍게도 응답자의 61%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9%는 "의견이 없다"고 답했다.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의 사촌이자 미국 이민청장의 부인인 로라 델라노 하우틀링은 유대인 난민의 미국 이민을 강하게 반대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녀의 사촌은 이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 적이 없지만, 하우틀링은 "2만 명의 매력적인 아이들이 너무 빨리 2만 명의 못생긴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부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정말로 대의를 위해 헌신했고 그녀의 남편이 난민 아이들을 돕기를 원했다.
1939년, 900명이 넘는 유대인 난민들을 태운 독일 여객선 MS 세인트 루이스가 쿠바 아바나로 항해했지만, 입국이 거부되었다. 그리고 거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망명을 시도했지만, 두 나라 모두 난민들을 외면했다.
트뤼도는 "우리는 세인트루이스에 탑승한 907명의 독일 유대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사과합니다" 라고 말했다. "캐나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더 빨리 사과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그가 덧붙였다.
미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 영토를 강타하기 전까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격이 있기 며칠 전 예일대 학생 그룹이 미국 제1 위원회(AFC)를 설립했다.
미국이 진주만 공격에 반응하지 않고, 만약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홀로코스트를 끝내는 것을 돕지 않았다면, 우리의 세계는 오늘날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1941년, 닥터 수스는 이 주제를 다룬 정치 만화를 만들었다.
출처: (History Collection)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The David S. Wyman Institute for Holocaust Studies) (BBC)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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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학교에 대한 공격부터 회당과 유대인 사업체, 그리고 개인을 향한 괴롭힘까지 그 양상도 다양하다. ADL의 마리나 로젠버그 국제 회장은 일부 유대인들이 유대교 상징물을 숨기거나 이름까지 바꾸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처음이 아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1938년 말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본격화되며 수많은 유대인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들 중 다수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는 훗날 연합군의 일원으로 승전국이 되었지만, 전쟁 초기에는 유대인 난민을 외면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사진을 통해 북미가 나치 독일에서 온 유대인 난민들을 구하기를 거부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